반갑다 친구야
반갑다 친구야
  • 강석범 충북예술고 교감
  • 승인 2022.07.06 17: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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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산책
강석범 충북예술고 교감
강석범 충북예술고 교감

 

아주 가끔 외로울 때가 있다.

엊그제가 그랬다. 개인전을 앞두고 똑같은 작업을 수없이 반복한다. 내 작업이 그 모양이니 어쩔 수 없지만 지난 주말은 너무 뜨거웠다. 석고붕대로 모형을 떠내고 햇볕에 말린다. 그리고 다시 틀 위에 석고붕대로 정성껏 문양을 찍어낸다. 계속….

`내가 지금 뭐 하는 짓이지? 돈이 되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갑자기 유명한 스타 작가가 되는 것도 아니고….'

휴일을 반납하고 기계 같은 똑같은 동작만 반복하는 내 모습을 스스로 인지하면서 갑자기 외로워졌다.

혹시 죽음 직전이 이런 느낌일까? 오롯이 혼자인 느낌. 시작도 내가 했고, 내가 해결해야 하고, 마무리도 나 혼자 해야 한다.

이번 개인전이 12번째이니 지금껏 이 짓(?)을 12번 넘게 하면서도 이런 느낌은 없었다. 정말 외로웠다. 세상에 나 혼자 덩그러니 남아, 그동안 지은 죄의 업을 조금이라도 덜어내듯, 그저 아무 영혼 없이 같은 동작을 반복하고 있는 나를 보았다. 이건 정말 미친 짓이다.

프랑스 파리에 사는 친구가 한 달 여정으로 한국에 들어왔다. 아직 식사 한 번 못했다.

마침 지난 일요일 점심에 지인들과 같이 점심을 먹자는 연락이 왔다. `왜 하필 이때?' 갑자기 심각해졌다. 일요일 1시부터는 내 설치 작업을 도와줄 설치 전문 작가와 3주 전부터 미팅을 잡아놓았다. 워낙 힘들게 잡아놓은 시간약속이라 변경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개인전을 앞두고 중요한 작업 미팅을 미룰 수도 없고, 몇 년 만에 한국에 들어온 친구도 봐야 하고. 결국 내 작업을 선택해야 했다. 정말 미안하다는 문자를 보내자, 곧바로 답장이 왔다.

“괜찮아 좋은 일엔 충분히 용서가 됩죠. 더운데 준비 잘하고, 미리 축하 축하.”

이 친구도 미술인이다. 프랑스에서는 제법 잘 나가는 화가다. 매니지먼트도 두 개를 거느리고 있다. 물론 작품 가격도 어마어마하다.

내가 프랑스에 들어갈 때면 늘 이 친구 집이나 아틀리에에서 며칠 혹은 몇 주씩 신세를 진다. 남편이 7살 연하 프랑스사람인데 정말 장난꾸러기다. 한국 소주를 너무 좋아해 몇 해 전 프랑스 전시 때는 친구 집에서 밤늦도록 같이 소주를 마신 기억도 있다.

이런 친구가 한국에 왔는데 작품전 준비 때문에 못 본다는 건 정말 화가 난다. 그렇다고 작가와의 작업 약속을 깰 수도 없다. 뭐랄까, 선택할 수 없는 미로 속으로 끝없이 걸어가는 기분? 그런 기분으로 오전 내내 영혼 없는 작업만 해야 했다. 석고를 떠내고 다시 붓고 떠내고 어느 순간, 내가 지금 뭐 하고 있는지도 모를 만큼 먹먹함이 가슴 깊이 쑥~ 들어왔던 일요일 한나절이었다.

어제 마무리하지 못한 고래 꼬리 스케치를 이리저리 분석하며 구조를 파악한다. 정말 웃긴 건, 어제의 내가 어디로 갔는지, 오늘은 전시를 앞두고 뭔가 계획하며 살아있는 나를 본다. 정말 웃기지 않는가? 이게 뭘까. 어제 떠냈던 석고들이 잘 말랐는지 확인하고 곧바로 컬러링에 들어간다. 색도 잘 입혀진다. 오늘의 내가 진짜 내 모습일까? 그럼 어제 반나절의 나는 누구지?

다음 주에 친구가 한국을 떠난다는 데 그전에 꼭 한번 봐야겠다. 얼큰한 칼국수에 그 좋아하는 소주 한잔은 대접해야 하지 않겠는가? 뭐 그리 대단한 작품 하는 것도 아니면서 친한 친구와 따뜻한 밥 한 끼 못 한다면야 그게 더 웃긴 거 아닌가. 까짓것 예술이고 나발이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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