억수가 퍼분 날
억수가 퍼분 날
  • 안승현 청주문화재단 문화산업팀장
  • 승인 2022.07.05 19: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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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의 문앞에서
안승현 청주문화재단 문화산업팀장
안승현 청주문화재단 문화산업팀장

 

해 질 녘 억수가 퍼붰다. 순식간에 퍼 붇던 비는 마지막 굵은 방울을 툭 하니 떨어트리고 멎었다. 그리곤 언제 그랬나 싶게 쨍하니 해를 등장시켰다. 머리 위에는 먹물 빠진 구름이 흐른다. 억수의 멈춤은 서쪽 먼발치에 홍화 염색을 한 해를, 맞은편 우암산 자락으론 무지개를 그렸다.

하지(夏至)가 지난 지 얼마 되지 않았다. 해가 완전히 서산을 넘어가려면 좀 더 시간이 있을 터, 가로등이 켜지기 전에 몸을 움직인다. 억수에 넘어간 고추는 없는지? 얼굴만 한 수국은 고개를 잘 곧추세우고 있는지? 아욱 싹을 갓 틔운 땅이 장 않았는지? 억수에 모두 잘 버티고 있어 한시름 놓는 순간, 심지도 않은, 눈에 많이 익은 싹이 보인다.

`이웃집 토토로'의 한 장면처럼, 순간적으로, 어제까지도 보이지 않던 것이 싹을 틔웠다. 뽀얀 상아색에 둥근 아이스크림 손잡이처럼 굵은 줄기, 엄지손가락만 한 떡잎을 기세등등하게 펼쳤다. `잔나비'의 `블루버드, 스프레드 유어 윙스!'를 즐겨 들었나? 아주까리 싹이다. 겨울 된서리를 맞고 가마솥에서 삶아낸 쇠죽이 되어 그냥 땅에 널브러졌는데, 씨앗이 발아한 것이다. 웬만한 건 봄에 다 뽑아냈는데, 흙 속에서 숨죽이며 때를 기다렸던가? 이미 다른 작물들이 뒤덮인 곳이다. 싹을 틔워 받자 경쟁에서 밀릴 걸 알 텐데도 싹을 틔웠다. 그리곤 괜한 걱정이라고 하듯 폭풍 성장이다. `잭과 콩나무'의 나무처럼 말이다. 이러다간 다른 작물들을 덮칠 기세다. 공들여 키우는 작물들은 조금만 가물어도 맥을 못 추고 주저하는 사이, 저돌적인 이 녀석의 성장은 놀라움을 금치 못한다.

비는 부유하던 것들을 안아 땅으로 내렸다. 형체도 없는 냄새도 없는 무수히 떠다니는 것들을 땅으로 가라앉혔다. 흙에 녹아 넣으며, 씨앗에게 다음 역할을 부여한다.

비는 씨앗을 깨웠다. 땅속 깊은 속에서 잠자고 있던 녀석들의 거사가 시작되었다. 씨앗이 맺기 전에 서둘러 뽑아낸 쇠비름은 채송화(?)밭이 되었다. 한두 개 눈에서 발각되지 않은 비단풀은 금세 화분 위를 덮어버렸다. 앙증맞은 노란 꽃을 피웠던 괭이밥은 화포군단을 이뤘다. 씨앗 처리도 안 했건만 이 녀석들의 확신은 무엇인지? 비가 내리기만을 기다렸던가? 하긴 비가 오기 전에도 한두 녀석 간을 보고는 있었다. 몇 개 안 되니 족집게 손에 제거되기 일쑤였는데, 이런 닭의장풀은 마디마디에서 뿌리를 내렸다. 확신을 찾아낸 녀석들의 세상이다.

비는 불규칙하던 땅을 고르게 폈다. 그리곤 땅 위로 많은 것을 올렸다. 땅을 편향적으로 이용하려는 무지한 인간의 `목적지향'에 제동을 걸었다. 어느 것 하나 필요하지 않은 것 없는 세상이라 일러주는 듯, `상보성(서로 모자란 부분을 보충하는 관계에 있는 성질)'을 알면서도 애써 외면하는 못난 인간을 나무라는 듯하다.

비는 애써 제거했던 것들을 상기시킨다. 기존에 자라고 있던 녀석들의 사이를 비집고 올라오는 싹들은, 그, 전부터 그 자리에 있었고 조건이 맞기만을 기다렸다. 비는 어느 하나의 조건에 의해 생명이 싹을 틔우고 자라는 것이 아닌 다차원적임을 일러준다. 다양성 속에서 서로 보완적 관계를 위해 다른 녀석들보다 더 바지런하게 움직이라 격려한다. 경쟁하더라도 존속하는 터전을 만들어 준다.

간만에 비에 젖는다. 흠뻑 젖었다. 열병에 지칠 대로 지친 몸을 비에 맡긴다. 쏟아지는 그대로를 받아들인다. 부유하던 잡념들이 씻겨 내려가진 않을까? 행여나 마음 깊이 조건이 맞지 않았던 씨앗이 깨어나지는 않을까?

내 안엔 흙이 없어서인가? 그동안 품은 씨앗이 많지 않아서인가? 억수가 퍼 분 날 기분이 억수로 좋지는 않았다. 그래도 간만에 흠뻑 맞은 비다. 입꼬리가 올라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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