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함을 위하여
평범함을 위하여
  • 정명숙 청주문인협회장
  • 승인 2022.07.04 20:03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生의 한가운데
정명숙 청주문인협회장
정명숙 청주문인협회장

 

주말이면 딸이 아기를 데리고 온다. 나는 모녀에게 `어서 오시라' 공손하게 허리 굽혀 절하고 방긋 웃는 아기를 받아 안았다. 딸이 어이없다는 듯 웃어도 희망찬 미래를 안겨주는데 그깟 절이 문제인가.

나이 든 자식과 함께 사는 친구가 여럿이다. 딸보다는 아들이 많다. 이젠 포기했다고 하지만 주변의 색싯감이나 신랑감에 눈독 들이는 것을 보면 아직 미련이 많아서다. 어쩌다 모임에서 혼사 소식을 전하는 지인을 만나면 장가가는 늙은 자식이 고마워서 절이라도 하고 싶단다.

혼기를 놓친 자식이 있으면 부모 마음은 몹시 불편하다. 아직 인연을 만나지 못해 그럴 것이라는 위로의 말도 공허하다.

남의 집 자식보다 못난 것도 아닌데 결혼할 생각을 하지 않아 문득문득 속상하다. 분가해서 따로 살고 있으면 조급증이 덜 할까. 부모 밑에서 집을 마련해야 하는 부담도, 밥걱정도 없으니 몸 달게 없다는 것인가. 한집에 살면서 시들해지는 자식 얼굴 보는 것도 편하지 않단다.

결혼은 했어도 출산계획이 없는 젊은 부부도 많다. 짝을 만나 가정을 꾸릴 때만 해도 아무 걱정이 없었다.

아이가 생기지 않아도 크게 걱정하지 않았다. 그러다 어느 날, 아이는 낳지 않고 우리 인생 즐기며 살겠다고 선언했을 때도 설마 했다. 평범한 삶을 거부한 자식으로 인해 당연하게 여겼던 손주의 탄생을 시나브로 포기해야 하는 서글픈 부모는 사는 재미도 없고 미래가 없으니 희망도 없다고 한다. 기다리다 지쳐 이젠 나는 나대로 살고 너는 너대로 살다 가면 그만이라는 자조 섞인 말만 공허하고 쓸쓸하다.

삶에는 두 종류의 비극이 있다. 사랑을 얻는 비극과 사랑을 잃는 비극이다. 새로운 희망과 설렘으로 시작되어 싫증으로 끝나는 사랑이, 결혼은 해도 후회, 안 해도 후회라는 말과 상통한다.

사연은 각자 다르겠지만 간절함으로 결혼이라는 목적을 이뤘어도 짧은 시간 환희로 꿈틀대다 독하고 질긴 권태에 잡혀먹힌 부부들이 하나 둘인가. 행복은 멀고 환멸은 가까이 있어 하루에도 몇 번씩 이혼을 생각하면서 자식이 적령기가 되면 얼른 혼인시켜 제 길 가라고 등 떠미는 건 무슨 조화 속인지 모르겠다.

딸들이 나이가 차면서 엄마처럼 살지 않겠다고, 그래서 절대 결혼은 하지 않겠다고 단호하게 말했었다. 서른이 넘어가자 초조해지기 시작했다.

마음이 변했는지 서른 중반을 넘어서자 결혼하더니 기특하게 금방 아이도 낳았다. 혼자였을 때보다 시련이 닥쳐도 아이가 있으니 인내하게 되고 희망이 있어 살만하다고 했다. 저희만 그럴까, 부모도, 주윗사람들도 아이를 보면 시름이 사라지고 행복하다.

가끔 아기 봐주러 가는 내게 문우는 기쁘고 감사한 마음으로 아기한테 절하고 보라고 한다. 맞는 말이다.

살다 보면 기둥서방 같은 존재가 필요하다. 자신의 고혈을 빨아먹는 존재이면서 동시에 의지할 수밖에 없는 `웬수'다. 지혜가 힘을 얻기 위해서는 고뇌를 통과해야 하듯, 결혼생활도 힘을 얻기 위해서는 애증의 터널을 통과해야 한다. 결혼의 길은 행복과 불행의 줄다리기 같으나 고난이 깊을수록 인생의 참맛을 알고 노력함 속에 삶의 진리가 있지 않던가.

부모의 어려운 결혼생활을 보면서 마음을 닫았던 아이들이 생각을 바꾸고 안겨 준 선물, 아이는 내게 새로운 세계를 만나게 해주고 일상의 평범함을 완성 시켜주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