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자가 익어가는 계절
감자가 익어가는 계절
  • 김순남 수필가
  • 승인 2022.06.29 19:4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生의 한가운데
김순남 수필가
김순남 수필가

 

하지(夏至)가 지났다.

하지는 이십사절기중 하나이며 낮의 길이가 가장 긴 때이자 이제 본격적으로 여름이 시작되는 시기이다.

어느새 논에 심은 모들은 자리를 잡고 하루가 다르게 자라고 있다.

산에는 떡갈나무, 낙엽송, 느티나무 잎들도 연둣빛을 벗어나 갈맷빛으로 변해 가고 있다.

자두나 살구 같은 여름과일이 익어가며 버찌가 길 위에 까맣게 떨어지는 계절이다.

농촌에서는 감자가 영그는 때를 하지를 기점으로 삼았다.

포슬포슬 영근 햇감자를 쪄 먹으면 그 맛이란 어떤 간식에도 견줄 수 없을 만큼 내게는 맛난 음식이었다. 유년시절 감자 꽃이 피었다 지면 맛있는 감자가 기다려졌다.

어머니한테 언제 햇감자를 먹을 수 있는지 물어보곤 했었다. 어머니는 하지를 지나야 감자가 여물어 분이 나고 제 맛이 난다고 하셨다.

그렇게 말씀하시지만 감자밭이랑 한쪽에 조심스럽게 호미를 넣어 몇 포기 캐다가 감자밥을 해주시곤 했다.

이른 봄에 심은 감자는 부지런한 작물이다. 싹을 틔우고 꽃을 피우며 땅속에 자그만 감자알을 열심히 살찌우고 영글게 하여 농부에게 일찍 수확의 기쁨을 안겨준다.

이맘때면 보리와 밀도 수확을 한다. 산촌에 봄은 춘궁기를 빼놓을 수 없지 않던가.

끼니를 걱정할 만큼 어렵지는 않았지만 식구가 많은 우리 집은 식량을 절약하기 위해 저녁 한 끼는 칼국수로 밥을 대신하는 날이 많았다. 칼국수를 끓일 때 감자를 넣어 끓이면 국물 맛이 더욱 구수해 국물마저 비웠었다.

농촌에 햇보리가 나오면 곤궁함도 좀 해결이 된다.

보리밥을 지을 때 감자를 몇 알 넣으면 한결 밥맛이 좋다.

땅속에서 겨울을 버텨낸 보리는 성질이차고 찰기가 없는 편이다. 뽀얀 감자를 주걱으로 툭툭 으깨어 섞으면 쌀보다 보리쌀이 많지만 식구들은 모두들 그 순박한 감자 맛에 물들어 고단함도 잊게 된다.

어머니는 밀 타작을 하여 밀가루를 빻아오면 감자 붕생이를 만들어 주셨다.

감자를 밑에 깔고 밀가루 반죽을 하여 감자위에 얹어 쪄내면 되는데, 요즘 흔히 찾는 간식 치킨이나 피자에 비할 바가 아니다.

감자는 반찬으로도 단연 으뜸이다. 감자에 빨간 양념을 넣어 볶거나 채를 쳐서 프라이팬에 볶아내면 맛있는 밥반찬이 된다.

그동안 감자를 좋아하면서도 진가를 모르고 먹어왔다.

감자는 왠지 기근이 심할 때 구황작물처럼 여겼는데 쌀, 밀, 옥수수와 더불어 세계 4대 식량 작물이라 한다.

영양소도 풍부하다. 열을 가해도 쉽게 파괴되지 않는 비타민C를 비롯해 필수 아미노산과 칼륨도 다량 함유하고 있다니 감자가 더욱 귀하게 여겨진다.

하지가 지나고 장마가 오기 전 감자를 캐는 때이다.

밭고랑에 토실토실 잘 영근 감자가 줄지어 앉아 내리쬐는 햇볕을 받으며 빛나고 있다.

감자밥에는 열무 겉절이와 고추장한술, 된장찌개면 제격이다. 모처럼 잊었던 맛을 느껴보리라.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