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의 별리(別離)
6월의 별리(別離)
  • 정규호 문화기획자·칼럼니스트
  • 승인 2022.06.28 19: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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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단상
정규호 문화기획자·칼럼니스트
정규호 문화기획자·칼럼니스트

 

6월은 헤어짐을 가장 실감하게 되는 계절이다. `헤어진다'는 것은 맺은 관계를 끊고 따로 갈라서거나 따로따로 떨어지고, 상하거나 터져 갈라진다는 뜻을 포함하고 있다.

6월의 헤어짐은 이별(離別)보다 별리(別離)가 더 어울린다. `이별'은 시간과 장소, 그리고 관계의 끊어짐이 회복되기 어려운 상태라면, `별리'에는 아무래도 `사귐이나 맺은 관계를 끊고 따로 갈라 섦'의 국어사전 뜻풀이처럼 단절보다는 미련의 애틋함이 있다.

우리는 한 해에 두 번, 정년이 보장된 헤어짐을 겪는다. 그중 12월에 해당하는 경우에는 송년과 새해의 교차에 따라 그저 그런 통과의례로 여기기 마련이다. 그러나 낮이 길어 할 일이 많은 것처럼 느껴지는 한여름의 퇴직은 어쩐지 낯설고, 상심은 그만큼 커질 수밖에 없다.

`퇴직', 또는 `퇴임식'이라는 단어에 공연히 울컥해지고 눈시울이 뜨거워지는 건 아마도 6월이, 녹음 창창한 6월이, 헤어짐과는 좀처럼 어울리지 않은 계절이기 때문이리라.

정년을 꽉 채웠거나, 선택을 받지 못해 자리를 비워야 하는 선출직에 이르기까지 떠나는 6월은 내내 아쉬움으로 기억된다.

지금이야 먹고사는 일에 온갖 우여곡절이 늘어나고, 한 직장에서 버티고 살아남는 일에 위태로움이 다반사이지만, 지금까지의 우리네 삶은 대체로 일자리를 선택한 청춘 이후 미우나 고우나 주어진 세월을 묵묵히 견뎌야 했다.

첫 출근 이후 정년을 다 채워 퇴직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세월 동안 멈추지 않았던 하루하루를 끝내는 일, 그 별리(別離)는 장엄하다. 사람이 경제 활동을 하면서 비로소 사람 구실을 하는 긴 세월 동안 단 하루도 허투루 살아간 사람은 없다.

그 일이 적성에 맞지 않거나 흥미를 찾을 수 없다 해도 참고 견딜 수밖에 없었던 까닭은 그 안에 나를 중심으로 회전하며 버티는 우주가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일'을 위해 나를 변화시키거나, 그럴 용기마저 없을지라도 `일'에 스스로를 맞춰야 하는 인고의 시간을 견뎌 왔다. 싫증이 나고 흥미가 없더라도 `책임'으로 스스로를 달래며 자신과 가족의 삶을 지탱해 왔다.

6월의 별리는 아픔 대신 그런 각각의 삶이 역사의 이름으로 중단없이 이어왔던 고단함으로 더 숭고하다. 그러니 떠나는 것도, 떠나보내는 것도 마냥 서럽거나 애틋한 일만은 아니다.

박진영이 만든 노래 <대낮에 한 이별>의 노랫말 “햇살이 밝아서/ 햇살이 밝아서 괜찮았어/ 햇살이 밝아서/ 아픔을 잊을 수 있었어”처럼 헤어짐의 슬픔이 오히려 환하게 다음 날과 또 다음 날들로 이어질 수 있는 용기와 위로, 그리고 다시 시작하는 희망이어야 한다.

그럼에도 한평생을, 인간의 조건에 충족하며 오로지 `일'에 몰두하며 먹고 사는 것에 골몰했던 날들이 지나고 난 후의 별리(別離)는 아득하다. 아직 팔팔하다는 자신감은 충만한데 당장 내일부터 할 수 있는 일과 해야만 하는 일이 사라진 뒤 밀려오는 허전함과 허탈함은 어떻게 채울 것인가.

습관처럼 이른 아침에 눈이 떠지고, 버릇처럼 지난 하루하루의 일과가 아른거리는 혼돈은 무엇으로 견뎌내야 하는가.



別離不下淚 이별의 눈물 흘리지 않는다 하여/ 未必皆丈夫 반드시 모두 대장부는 아니지/ 恐傷居者意 그곳에 남은 그대 마음 상할까 봐서/ 强顔作歡愉 억지로 기쁜 얼굴빛을 지었소/ 旣已徑出門 이미 오솔길로 문을 나온 뒤에/ 誰使頻蜘? 그 뉘 자주 머뭇거리게 하는가/ 皎如水中月 물속의 달 같은 깨끗한 님이여/ 欲捉還覺無 잡으려다 다시 없음을 깨달았소/ 人生多結識 인생이 서로 아는 사람 많건마는/ 亦復胡爲乎 또한 다시 어찌해야 한단 말이요.

<황현 `길 가던 중에 느낌이 있어 무정에게 부치다' > 망국의 한은 품고 스스로 죽음을 선택한 조선의 선비 황현의 애절한 표현만큼 세상의 모든 `퇴임'은 숭고하고 장엄한 서러움.

팔팔한 장년의 그대들에게 6월의 별리(別離)가 그저 단순한 멈춤이, 헤어짐이 아님을 우리는 모두 선명하게 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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