쥐똥나무 꽃
쥐똥나무 꽃
  • 김용례 수필가
  • 승인 2022.06.23 1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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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김용례 수필가
김용례 수필가

 

봄이 다 갔다. 이제부터는 뜨겁게 살아갈 계절 여름이다. 마당에서 조금만 꿈지럭거려도 땀이 줄줄 흐른다.

얼굴 다 보여준 꽃들, 가지를 잘라 내고 주변 정리를 하다 보면 두어 시간이 훌쩍 지나간다. 봄꽃은 꽃을 먼저 피우고 몸집을 키우는 꽃이 많다.

예쁨도 사랑스러움도 잠시, 꽃대를 잘라주고 후속처리를 해야 여름꽃을 예쁘게 볼 수 있다. 상큼하게 정리한 화단을 보며 “보기에 좋더라” 하는 말이 절로 나온다. 땀을 흘리고 나면 몸과 마음이 개운해진다.

올봄 쥐똥나무 세 그루를 심었다. 앞마당에 두 그루, 뒤꼍에 하나를 심었다. 하늘 정원 수목원에 갔을 때다. 길을 걷다 꽃향기가 너무나 좋아서 어느 꽃인가 두리번거리는데 커다란 나무에 자잘하게 핀 하얀 꽃에서 나는 향기였다. 쥐똥나무라는 것을 알았다. 그때부터 나는 쥐똥나무에 반했다. 쥐똥나무는 우리나라 어디에서나 잘 자란다.

열매가 색깔이나 크기, 모양이 쥐의 배설물과 너무나 닮아서 `쥐똥나무'라는 이름이 붙여졌단다. 꽃향기를 맡아 본 사람들은 향에 걸맞지 않은 이름이라 서럽겠다고 하지만 그 좋은 향으로 사랑받고 있으니 그 또한 나무의 장점이다. 이 나무의 가장 큰 특징은 강인한 생명력에 있다.

나도 몇 번을 옮겨 심었다. 몸살 한 번 하지 않고 자리를 잡았다. 얼마 전까지 쥐똥나무는 나무로 크는 게 아닌 줄 알았다. 늘 담으로 경계를 막아주는 역할이었으므로 그만큼만 크는 나무인 줄 알았다. 꽃은 화려함보다는 청초하고 귀엽고 향은 기가 막히게 좋다.

세상에서 가장 순백하고 커다랗고 화려한 백목련 꽃이 필 때는 모든 이의 시선을 받지만 질 때는 고개를 외면하고 싶을 만큼 추악한 모습이잖은가. 쥐똥나무 꽃은 조용히 폈다가 아무도 모르게 살며시 흔적을 버린다.

쥐똥나무는 정원수로 환영받는 나무는 아니다. 잎이 멋진 것도 아니고 꽃이 화려한 것도 아니고 수형이 멋지게 크는 것도 아니다. 그런데 나는 나무의 매력에 빠졌다. 추위와 더위에 의연하고 자리에 까탈을 부리지 않고 잘 자란다. 비록 타고난 덩치는 작지만 적응력이 매우 높은 나무다. 쥐똥나무의 강인함은 우리 어머니들의 삶을 보는 것 같다. 여자는 엄마라는 이름을 달면 어떤 불행한 환경에서도 강인해진다. 나는 우리 큰고모를 존경한다. 청소하는 굿은 일하면서도 늘 밝은 모습이었다. 벌써 칠순을 넘긴 지 오래되었다. 생활력 없는 남편을 탓하지 않고 당신이 생활전선으로 나가 두 자녀를 남부럽지 않게 키웠다. 강인하고 향기 짙은 쥐똥나무 꽃 우리 큰고모를 보는 것 같다.

내 삶은 지금까지 화려해 본적도 뜨거웠던 적도 없었다. 앞으로도 화려함을 꿈꾸지 않을 것이다. 앞장서는 것보다는 따라가기, 나서기보다는 뒤로 빼는 자신감 결여 자이다. 그런데 계절은 유독 뜨거운 여름이 좋다. 아직은 내 안에 한 가지 열정은 살아있다. 본격적으로 뜨거워질 여름이다.

꽃은 작디작지만 그 안에 온 우주의 향기를 품고 있는 사랑스러운 쥐똥나무 꽃, 쥐똥나무 꽃처럼 소리 없이 향기를 내는 사람으로 살고 싶은 소망을 쥐똥나무 아래서 꿈으로 꿔본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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