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산의 소음은 어느 나라의 것인가
평산의 소음은 어느 나라의 것인가
  • 정규호 문화기획자·칼럼니스트
  • 승인 2022.06.21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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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단상
정규호 문화기획자·칼럼니스트
정규호 문화기획자·칼럼니스트

 

지금까지 살면서 나는 양산이라는 곳을 단 한 번도 가보지 못했다. 그리고 앞으로도 굳이 그곳을 찾을 생각도 없다.

비극으로 생을 마친, 그리하여 고향 땅에 묻힌 봉하마을을 몇 번이고 다시 찾아가고 싶은 마음과는 다르다.

주어진 임기를 무사히 마친 전 대통령의 사저가 있는 곳이라는 이유로 주목을 받고 있으나, 경남 양산의 평산 마을은 그전까지는 그저 여느 농촌과 별로 다를 게 없는 곳 아니었던가. 그러니 조용하고 평화로운 마을로 남아 대통령을 지낸 사람도 평범한 이웃들과 어울려 편안하게 살 수 있으면 얼마나 좋겠는가.

그러나 사람들의 욕심은 그렇게 평화롭지 않은 듯하다. 퇴임하던 날부터, 아니 그전부터 적대적 관계를 드러냈던 일단의 사람들이 평온하던 평산마을을 들쑤시면서 원래부터 그곳에 살던 사람들의 온전한 삶을 위협하는 지경에 이르고 있다. 급기야는 반대 진영을 자처하는 사람들이 현직 대통령 사저가 있는 마을로 몰려가 맞불집회를 열고 있으니, 그야말로 극한대립이 일상화된 대한민국의 적나라한 민 낯이 아닌가.

불행하게도 대중은 불과 몇 해 전, 선거를 거친 이명박 정부에서의 ABR(Anything But Roh: 노무현 정부와는 무조건 반대로)에 대한 집착에 몸서리치던 기억을 망각하고 있다. 그리고 지금, 뉴스를 아예 보지 않는다는 사람이 흔한 지금, ABM(Anything But Moon)이 닮은꼴로 서서히 발톱을 드러내고 있음을 우려한다.

직전의 대통령이 임기를 마칠 때까지 절반에 가까운 지지율을 받은 것은 질곡이 만만치 않은 한국 현대사에서 놀라운 일이다. 그러나 그 나머지 절반의 여론조사 응답률은 극렬한 적대적 관계를 거두지 않고 있고, 그 `반박의 절대적 욕망'이 평산 마을을, 그리고 거기 원래부터 살던 늙은 동족을 못살게 하고 있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사람을 고르는 일에 실망하는 것은 이제 온전히 평범한 국민의 몫이 되고 말았다. 청문회는 존중되지 않아도 무방한 요식행위로 전락했고, 심지어 어떤 권력은 청문회 절차마저 무시된 채 고집이 꺾이지 않고 있다. ABM으로 향하는 집착은 숨기지 않으면서도 인사행태는 전임 정부의 선례를 들먹이며 정당화한다. 이러한 전면적 부정과 극단의 대립은 정권의 향방에 따라 제한적으로 작동되는 것에서 멈추지 않는다.

권력을 차지하기 위해 필사적으로 겨루는 정치권은 그나마 목적이라도 있지만, 이러한 극한대립이 국민 전체에 미치는 영향은 실로 막중한 것임에도 그 폐단을 전혀 자각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 더 심각한 문제다.

빨간색으로, 파란색으로 서로를 나누어 경계하고, 선택의 주권 행사에 당당하지 못하며, 비난을 넘어 서로 대화를 삼가거나 아예 관계를 차단하는 극단의 한국 현대사는 민주화와 경제적 번영의 성과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

`우린 너희와 다르다'는 표제는 서로의 `우리'에게만 적용되고, 여태까지의 권력은 아무도 `저쪽'을 아우르거나 설득하여 화합하겠다는 의지를 정치적 술사를 넘어 진정하게 시도하지 않았다.

“황톳빛 노을 물든 석양 대통령이라고 하는 직함을 가진 신사가 자전거 꽁무니에 막걸릿병을 싣고 삼십 리 시골길 시인의 집을 놀러 가더란다.”는 신동엽 시인의 <석양 대통령>은 상상에만 머물러야 하는가.

어느 한 쪽은 무조건 `반박'으로, 또 다른 쪽은 `저항'이라고 우기는 확증편향의 세상에 평산마을의 평범하게 늙은 사람들의 평화로운 삶이 무너지고, 나머지도 영영 갈라지는 `현재'는 고스란히 우리의 `미래'로 전이되니 어찌 끔찍하지 않겠는가.

우리 편만 말고, 평산의 `소음'을 불러 막걸리라도 나누며 `반박'의 이야기를 듣는 전직 대통령. 그의 통 큰 포용력이 세상을, 그리고 평산의 늙은 마을 사람들을 평화롭게, 더 위대하게 만들 수 있지 않을까.

나무처럼 반려동물처럼 적대적 `사람'에게도 정답게 이름을 불러주는, 거기도 우리나라.

일 년 중 낮이 가장 긴 하지(夏至)가 천진난만하게 지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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