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스할멈
박스할멈
  • 김경수 시조시인
  • 승인 2022.06.13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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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김경수 시조시인
김경수 시조시인

 

대문 안에 박스가 잔뜩 쌓여 있었다. 그러고 보니 한 동안 박스 할멈이 보이지 않았다.

그 언제부터인가 집안을 드나들며 어떤 할멈이 박스를 가져가기 시작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매일같이 드나들어도 처음부터 할멈은 자신이 누구인지 인사소개도 없었고 어떠한 말도 없었다.

어쩌다 마주칠 때면 가볍게 고개만 끄덕이는 것으로 인사를 대신하며 스쳐갔다.

그럼에도 할멈이 누구인지 어떤 사람인지 태준 또한 알려고 하지 않았다.

아니 어찌보면 관심이 없다고 해야 옳은 말일지도 모를 일이었다.

다만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날 때마다 박스가 사라진 것을 보고 할멈이 다녀갔음을 알게 되곤 하였다.

그러한 날을 여러 날 보아왔음에도 태준은 딱히 아는바가 없어 박스할멈이라고 부르게 된 것이었다.

그런 할멈이 요즘 들어 며칠째 보이지 않는 것이었다.

그렇게 궁금증이 시작된 지 하루가 지나고 이틀을 건너 사흘로 접어들 때 넌지시 옆집 아줌마에게 할멈의 소식을 여쭤봤지만 그저 무관심 한 듯 모르겠다는 말로 스쳐갔다.

궁금증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파고 들어갔다.

혹시 코로나에 걸린 것은 아닌지 아니면 다른 질병이 생긴 것은 아닌지 아니면 무슨 사고나 남모를 속사정이 생긴 것은 아닌지 알만한 이웃들에게도 수소문 해봤지만 할멈에 대해 아는 이가 없었다.

대수롭지 않은 듯 관심 밖에 이야기로 듣는 듯 했다.

태준은 혹시 스스로를 돌이켜 자신들로부터 서운하게 대해졌거나 불만이나 불편 때문에 보이지 않는 것은 아닌지 의문이 가기도 하였다.

어찌보면 비록 할멈에 대해 아는 바는 없어도 할멈 또한 이웃이라면 이웃이었다.

예전 같으면 한 동네에 살지 않아도 누구라고 물어보면 누군가 지나칠 정도로 모든 것을 알려주었던 때가 있었다.

그런데 지금은 자신의 집을 드나드는 데에도 그가 누군지에 대해 관심이 없는 듯 보였다.

한참을 생각하다 문득 할멈을 영영 못 보는 건 아닌가하는 의구심마저 들기도 하였다.

그렇게 몇 날이 지난 어느 날 박스가 말끔히 사라졌다.

대문 한켠에 죽치고 있던 박스, 비라도 내리면 후줄근해지는 박스를 어찌 해야 좋을지 전전긍긍 걱정했던 박스, 다른 사람이 가져가 버리면 할멈이 실망할 것 같았던 박스, 그 박스가 바람처럼 사라진 것이었다.

행여 누가 가져갔을까 공공연한 의심이 뇌리를 스쳐갔다.

하지만 그래도 우선 반가운 마음이 앞서갔다.

설마 할멈 말고는 그 일을 할 사람이 없을거라 여겼기 때문이었다.

그때 마침 아줌마와 마주쳤다. 그리고 곧바로 그녀의 말투에서 할멈이 다녀갔음을 직감하였다.

그 후로 박스는 쌓이지 않았다. 박스를 가져간 것은 바람이 아니었을 것이다.

아직도 할멈을 보지 못했지만 할멈이 오가는 생각이 들자 또 하나의 이웃이 곁에 있음을 알게 되었다.

이웃이란 늘 가까이에서 서로 기대어 살아가는 사람들이라고 말하고 싶다.

그래서 이웃은 사랑을 필요로 한다. 그것이 비록 사소하고 작은 것일지라도 늘 곁에서 자기와 같은 존재를 찾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므로 이웃사랑또한 다양한 것들이 나열될 수 있겠지만 그 중에서도 손을 꼽는다면 아마도 관심에서 비롯되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관심이란 이웃을 사랑함에 있어 언제나 다가갈 수 있는 이유에서다. 왜냐하면 이웃이란 존재가 관심 속에서 존재하기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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