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곳에 가면
그곳에 가면
  • 반지아 괴산 청안초 행정실장(수필가)
  • 승인 2022.06.12 18: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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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가는대로 붓 가는대로
반지아 괴산 청안초 행정실장(수필가)
반지아 괴산 청안초 행정실장(수필가)

 

그곳에 가면 마음이 늘 안 좋다. 다닥다닥 붙어 있는 작은 공간들 안에 그보다 더 작은 존재들이 맴맴 돌고 있는 그곳. 바로 동물원이다.

미세먼지가 한창 심했던 몇 년 전, 아이와 실내 동물원을 많이 다녔다. 늘 동물들을 가둬놓는 곳만 다니다가 하루는 동물들이 자유롭게 돌아다닌다는 동물원이 있다 하여 찾아간 적이 있다. 홈페이지에 나와있는 대로 그곳의 동물들은 진짜로 우리에 갇혀 있지 않았다.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동물들의 모습이 조금씩 이상하게 느껴졌다. 누가 지나가든 말든, 자신들의 몸을 만지든 말든 아무 반응이 없었던 것이다. 안내 표지판에는 동물들이 갑자기 공격할 수 있으니 아이를 동반한 부모님들의 각별한 주의를 바란다고 적혀 있었지만 공격은커녕 살아있는 게 맞는 건지 의문이 들 정도로 그들은 가만히 있었다. 유일하게 움직이는 건 눈동자였다. 껌벅껌벅. 무엇을 보고 있었는지 모르겠지만 지독하리만큼 한곳만 쳐다보며 그렇게 눈꺼풀을 의미 없게 내렸다 올렸다 하고 있는 모습에 괜스레 가슴이 서늘했다.

그 후로 얼마간의 시간이 흘렀고 그날의 기분을 서서히 잊어가던 어느 날 우연히 어떤 글을 읽고 엄청난 충격을 받았다. 동물원을 향한 비판적인 시선이 담긴 글이었다. 글쓴이는 동물원에 있는 모든 동물이 그렇다고 할 수는 없지만 아마 대부분의 동물이 제정신이 아닐 것이라고 말했다. 즉 정신병을 앓고 있을 것이란 말이었다. 혹여나 그 어떤 자극에도 아무런 반응이 없거나, 우리 안에서 이해할 수 없는 반복행동을 하고 있는 동물을 보았다면 인간의 이기심이 다른 생명체를 어디까지 사지로 몰 수 있는지 다시 생각해 봐야 한다며 경고했다. 그 순간 내가 무심히 보고 지나쳤던 석고상같이 굳어 있던 동물들이 생생하게 떠오르며 그날 느꼈던 서늘함이 다시 살아나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하지만 아이들을 키우는 입장에서 동물원은 그림책이나 영상으로만 봤던 동물들을 직접 보여줄 수 있는 최적의 장소이다. 발길을 끊을 수 없어 갈 때마다 남모를 씁쓸함을 쌓아가던 어느 날 놀이동산 안에 있는 동물원에서 아이가 이런 말을 꺼냈다. “엄마, 저 안에 있는 동물들 너무 불쌍해” 예상치도 못한 말에 정곡을 찔려 당황했지만 곧 아이가 왜 그런 말을 했는지 이유를 알 것만 같았다. 아이와 며칠 전 작가 앤서니 브라운의 그림책 `동물원'을 읽었던 것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그림책의 마지막 장에는 가족들과 같이 동물원에 다녀온 주인공 아이가 그날 밤 자신이 보았던 동물의 모습과 똑같은 모습으로 우리에 갇혀 있는 모습이 그려져 있다. 아직은 어린아이에게 굳이 나와 같은 죄책감을 심어주고 싶지 않아 특별한 언급을 하지 않고 지나갔지만, 이미 아이는 동물들의 슬픔을 느끼고 있었다. 엄마인 나에게 어떤 해답을 바라는 듯한 아이에게 자연으로 돌아가 본연의 모습으로 살아가는 것이 가장 좋겠지만 이미 멸종 위기에 놓인 동물들은 그 개체를 보존하기 위해 인간의 손길이 필요하다고 말해주었다. 그러나 이어지는 아이의 물음에 나는 더 이상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엄마, 사자도 호랑이도 미어캣도 호저까지 여기 있는 동물이 다 멸종 위기야?”

이제라도 죽을 때까지 인간의 유희를 위해 고통받다 끝내는 폐사로 생을 마감하는 동물들의 모습을 보며 무언가 느껴야 한다. 다른 생명체와 공존하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이 아닌, 지금의 우리가 느끼는 죄책감만이 아이들이 성장했을 때 그대로 전해지는 건 누구도 원하지 않을 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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