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답게 ~보다 대접을 먼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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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구숙진 KPCA 그림책 지도사
  • 승인 2022.06.09 17: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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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책 그릇에 담긴 우리 이야기
구숙진 KPCA 그림책 지도사
구숙진 KPCA 그림책 지도사

 

피터는 까치발을 하고 팔을 힘껏 뻗어 가며 목각 탑 쌓기에 여념이 없다. 제일 꼭대기에 악어 인형을 올려 장식만 하면 탑 쌓기는 성공이다. 그 순간 `와르르 와당탕!' 무너지고 만다. 피터의 마음은 어떨까? 그리고 부모님의 반응은 어떨까? 같은 상황, 텔레비전 광고 속 보호자는 다정한 얼굴로 다가와 아이를 감싸 안으며 함께 탑을 다시 쌓기 시작한다. 아주 이상적인 부모의 대처 장면을 보여주며 그리하길 또 권한다.

이쯤되면 아이들은 아니, 누구나 주변 상황이 어떠하든, 이유 여하를 불문하고 속상한 마음이 앞설 것이다. 단지 성인은 경험과 지식을 보태 다시 하든 포기 하든 해결하는 결정을 할 뿐이다. 그러나 아이들에겐 경험과 지식 기반이 없는 상태이니 부모의 지혜로운 대처가 필요한 것이다. 세상사뿐 아니라 가정사도 천태만상이다 보니 부모님들은 그때그때 다르게 반응한다. 그림책 <피터의 의자> 속 피터의 엄마도 달려와 살피기는커녕 “쉬잇! 좀 조용히 놀아라. 우리 집에는 갓난아기가 있어요.”라며 꾸짖기만 한다. 그렇다. 피터에게 동생이 생긴 것이다. 피터는 엄마가 있는 여동생 수지의 방을 살짝 들여다본다. 엄마는 행복한 표정의 얼굴로 동생의 요람을 흔들고 있다. 그 모습을 본 피터는 절망적인 표정을 짓는다. 설상가상으로 피터가 사용했던 아니, 피터 것이라 여겼던 요람이 어느새 분홍색으로 칠해져 있다. 어디 그뿐인가! 피터의 식탁 의자도 아빠의 손에 의해 분홍색으로 변하고 있다. 한술 더 떠, 아빠는 피터한테 도와달란다. 피터의 얼굴에서 결기가 느껴진다.

보편적으로 동생이 생기는 나이는 5세 이전이다. 이 시기는 인지발달과 언어발달이 폭발적으로 이루어지는 시기다. 즉, 자신의 존재에 대해 확신이 없는 시기란 뜻이다. 하여, 이 시기의 아기들은 나만이 가지고 놀 수 있는 것, 나만 바라보는 부모여야 하는 시기를 거친다. 그런데 어느 날, 나만의 영역으로 요상하게 생긴 또 다른 아이가 훅 들어온다. 동생이란 존재로 말이다. 형이나 오빠 `답게'라는 책임까지 얹어서 들어온다.

어디 그뿐인가! 여태 내 것이던 물건들이 하나, 둘 사라지는 걸 봐야 하고 아이의 온 세상이었던 엄마의 관심과 사랑도 점점 멀어지는 걸 느껴야 한다. 더불어 `하지 마!' `조심해!' `안 돼!'라는 섬뜩한 말과 함께 엄마의 굳은 얼굴 보는 것이 일쑤가 돼버린다. 이는 동생에게 사랑, 애정이라는 감정보다 경쟁심을 더 먼저 배우게 하는 요인이 되기도 하고, 퇴행 행동이나 공격적 행동을 유발하게 하기도 한다.

이 모든 감정을 온몸으로 느낀 피터는 결심한다. 도망치기로. 어디로? 집 담벼락 밑으로! 당연히 보따리도 쌌다. 피터가 아기였을 때 사진, 피터만 졸졸 따라다니는 강아지, 아직 피터의 것이라는 흔적인 파란색이 남아 있는 의자, 애착 인형인 악어 그리고 생존을 위한 먹을 것을 챙겨 생애 최초의 가출을 한다. 모두 피터의 존재감이 남아 있는 것들이다. 다행히 피터는 스스로 느낀다. 의자가 작다는 것을 알게 된다. 내 것들이 어찌하여 동생 것들로 바뀌는지를 체험을 통해 알게 된다.

엄마도 이에 부응하여 오로지 피터에게만 몰입하며 노는 시간을 갖는다. 아빠도 이에 질세라 아빠 옆 어른 식탁 의자에 피터를 앉히며 대우를 해 준다. 피터는 아빠와 눈을 마주 보며 이전과는 또 다른 세계가 있음을 받아들인다. 더불어 타인으로 넓혀가는 대인관계의 시발점이 되기도 하며 사회적 규범을 안정적으로 습득하기 시작하는 사소하지만 중요한 계기를 피터는 경험한다. 일련의 이러한 경험과 부모님의 칭찬, 인정 등 긍정적인 반응은 동생에 대한 부정적 반응을 사그라들게 한다. 동생과 함께 떠오르는 기억이 `형답게'라는 의무감보다 대우받은 긍정적 정서가 먼저 떠오르기 때문이다. <피터의 의자>는 무엇을 먼저 경험하게 해야 할지를 생각하게 하는 그림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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