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의 신비
생명의 신비
  • 김영기 전 충북교육과학연구원장
  • 승인 2022.06.08 16: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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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이 들려주는 과학 이야기
김영기 전 충북교육과학연구원장
김영기 전 충북교육과학연구원장

 

정자는 난자를 향해 여행을 떠난다. 어두운 자궁의 강을 쉴 틈 없이 달려간다. 경로를 알려주는 내비게이션 정보도 받지 못한다. 다만 끌림만 있을 뿐이다. 자궁과 수란관을 따라 난소까지 가는 거리는 대전에서 서울을 가는 정도란다. 그토록 힘들고 어렵게 찾아간 선수 중에서 난자는 단 하나의 정자만 받아들인다. 음과 양의 신비한 조화다.

이곳에 생명의 신비로움이 있다. 얇고 연한 난막을 뚫고 침입하려는 수많은 정자를 물리적 구조로 막는다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정자의 머리 부분에는 난막을 녹이는 효소가 들어 있기 때문이다. 정자는 양전하를 띠지만 난자는 음전하를 띠고 있다. 서로 이끌림이 대단하다. 그러나 제일 먼저 도달한 정자가 난자 안으로 들어가는 순간 수정란이 되면서 외부가 양전하로 바뀐다. 나중에 접근하려는 정자들은 양전하로 인한 강한 척력의 힘을 받게 된다. 그 힘은 물리적인 힘 보다 수십 배 강하다. 수백 개의 정자가 난막을 뚫고 들어가려 하지만 언감생심(焉敢生心)이다.

한 가정에 남편이 둘이거나 아내가 둘이라면 어떻게 될까. 나라를 다스리는 왕이 첩을 두면 여자들의 음(-)기운 싸움이 일어난다. 또한 대를 이을 자식이 많이 생겨나면 양(+)기운을 갖고 있는 형제들의 난이 발생하지 않던가. 음과 양이 공존하나 넘치거나 부족하면 균형을 잃어버린다. 남과 여, 음과 양의 조화를 이루고 살아가는 것이 세계질서의 기본이다.

내가 태어났다는 사실은 정말로 경이로운 일이다. 정자가 난자를 만나 생명이 되기까지는 숱한 고비를 넘는다. 최소한 3억대 일의 경쟁을 뚫었고 물리적·화학적으로도 어려운 장애물을 넘었다. 로또 당첨보다 더 어려운 여정을 견뎌낸 것이다. 눈을 뜨고 세상을 바라볼 수 있고, 감미로운 음악을 들을 수 있으니 얼마나 행복한가. 삶 속에서 작은 경쟁에 실패하거나 낙오 되었다고 자살하는 사람은 생명의 신비를 전혀 알지 못하는 사람일 게다.

난핵의 DNA와 정자핵의 DNA가 이중 나선구조를 이룬다. 반쪽 DNA가 일대일로 만나야 온전한 생명체의 씨앗이 된다. 만약 염색체의 어느 한 부분이라도 많거나 적으면 돌연변이가 되거나 죽는다. 생기가 심장의 박동을 진동시킨다. 하늘이 생기고 땅이 만들어지며 빛과 어둠이 창조되는 태초의 우주질서처럼 신경과 표피조직이 만들어지고 생명의 소우주 질서가 생긴다. 이것이야말로 신묘막측(神妙莫測)한 비밀이다.

우리의 존재 가치는 너무도 귀하고 귀하다. 내가 있고 우주가 있는 거다. 그렇게 험난한 여정을 극복하고 태어난 생명의 주인공이 바로 너, 그리고 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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