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두빛 고통
연두빛 고통
  • 김기자 수필가
  • 승인 2022.06.07 19:37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生의 한가운데
김기자 수필가
김기자 수필가

 

사방이 담으로 둘러져 있고 대문 앞은 아스팔트가 깔린 집에 산다. 이곳에 입주한지도 삼십년이 훌쩍 지났다. 마당 구석에 이사기념으로 단감나무를 심었는데 해마다 맛있는 감을 선물로 주어서 나무와의 눈 맞춤은 습관이 된지 오래이다. 뿐만 아니다. 계절의 변화를 가까이에서 온 몸으로 보여주기에 사랑스럽기까지 하다.

언제부터인가 가지 끝이 옆집 담을 넘기 시작했다. 신경을 거둔 것은 아니지만 간간이 끝가지를 다듬기는 여러 번이었다. 감을 딸 때면 맛보시라며 담 너머로 내미는 기분도 꽤 괜찮았다. 나만의 흡족함일까, 그렇게 감나무를 키우는 기분에 빠져서 이웃의 불편은 헤아리지 못했던 점이 그만 문제가 되고 말았다. 둔한 내 탓인지 몰라도 돌아보니 옆집주인은 내 마음과 방향이 전혀 다르다는 것을 뒤늦은 시간에 알게 되었다.

부탁인즉 담 너머로 깃든 가지를 제거해 달라한다. 늘어난 나무의 덩치만큼 담을 넘은 가지가 눈에 거슬렸나보다. 창을 열면 시야를 가린다는 이유가 덧붙여졌다. 남편과 나는 아들을 시켜 가지자르기에 들어갔다. 사다리에 올라 톱날을 대는 순간 나무의 고통이 내 온몸으로 전해오는 것 같은 느낌에 빠져들었다. 마당으로 널브러지는 연두의 잎들이 감나무의 울음소리로 들려왔다.

어쩌겠는가. 나를 위주로 살기보다는 이웃에게 민폐는 주지 말아야 한다는 생각이 앞선 선택이었다. 내색은 못했지만 옆집주인이 야속하기까지 했다. 내가 보아서는 창을 그리 막아서지도 않았는데, 하는 노파심마저 일어났지만 꾹 참아야 했다. 숭덩숭덩 잘려나간 나무의 모양은 그야말로 비대칭이 되고 말았다. 담 하나를 사이에 두고 뜻하지 않은 형벌을 치른 나무에게 그래도 살아남아야 한다는 위로가 절로 흘러 나왔다.

다행히 의연한 몸짓으로 녹색의 옷을 두르기에 바쁜 지금이다. 수난을 겪을지라도 생명이란 이런 것이라며 잎의 흔들림으로 말을 전해온다. 어느새 꽃망울까지 품고 있다. 머잖아 열매를 키우고 단내의 향으로 눈길을 사로잡아줄 터이다. 연두 빛 고통의 시절을 지우고 그 자리에서 또 다른 기쁨에 대해 몸으로 전하고 있으니 역시 생명이 있는 것은 신비로울 뿐이었다.

누군들 뜻한 대로는 살지 못한다. 돌아보니 내 삶도 그랬다. 성장기를 거칠 때에는 남아선호사상에 치어서 외로운 담을 쌓아야 했고 결혼을 하면서는 가파른 삶의 곡선 위를 걸어야 했던 날들이 대부분이었다. 그러면서도 나의 지경은 자연스럽게 넓어졌으니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겠다. 우리 집 감나무가 크기와 둘레를 더하듯이 말이다. 그렇지만 나 자신에게는 아직도 제한해야 할 부분이 너무나 많다는 것을 고백한다. 엄마로서 아내로서 세상을 향한 발걸음은 그다지 녹록할 수가 없는 현실에 처해있기 때문이다.

한 쪽으로 가지를 기울인 감나무를 물끄러미 본다. 여전히 잘 버티고 있다. 어쩌면 미완의 인격을 지닌 나를 닮은 모양새다. 모든 면이 완벽하지 않을 지라도 꽃피우고 열매 맺으며 고사에 이르기까지 나 역시 그렇게 순리대로 살아갔으면 좋겠다. 나무를 통해 의식의 세계가 조금이나마 확장되고 현실을 돌아보는 것만도 한걸음 앞서는 기분이기에 그렇다. 내게서 남은 날들이 연두를 넘어 낙엽색에 이른다 해도 환희의 빛으로 장식되기를 소원하면서.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