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표율 최대한 높이자
투표율 최대한 높이자
  • 권혁두 기자
  • 승인 2022.05.29 1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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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논단
권혁두 국장
권혁두 국장

 

이런 지방선거를 왜 하는걸까? 며칠 전 한 신문에 실렸던 어느 칼럼의 제목이다. 지난 27일 사전투표장을 찾아 투표용지 한움큼을 받아들며 불현듯 떠오른 게 다분히 냉소적인 이 칼럼의 제목이었다. 오해는 마시라. 칼럼이 제목 처럼 지방선거 무용론 같은 퇴행적 내용을 담지는 않았으니까. 작자는 사람이 몰려 치솟는 부동산 가격 때문에 주거 불안을 걱정하는 곳과 출생률 저하로 지역소멸을 걱정하는 곳이 혼재하는 상황에서 모든 지자체에 똑같은 형태의 정치가 강요되고 똑같은 정당 후보들이 경쟁하는 현실을 진단했다. 지방정치에 다양한 구조가 접목돼 지역별로 서로 다른 고민과 정책을 토론하는 지역 정당이 출현해 경쟁을 벌여야 한다고 한 처방은 공감을 얻기에 충분했다.

중앙에 뿌리를 둔 양당 독식구조가 견고하게 유지되는 한계 속에서 지역정당의 출현은 요원한 숙제이다. 이틀 후 유권자들은 그나물에 그밥인 밥상에서 최악을 걸러내는 고통스러운 작업을 또 수행해야 한다. 나름 인구와 자원을 확보한 대도시의 유권자들은 그나마 후보들 공약이라도 견줘보며 내게 닥칠 득실을 따져볼 수 있겠지만, 시한부 선고를 받은 군소 지자체 유권자들은 선거에서 희망을 잃은 지 오래다. 선거가 민주주의의 꽃이라고 하지만 그 꽃밭에 꽃은 드물고 정체 불명의 잡초만 무성한 게 지방선거의 현실이다.

답답하기는 후보들도 유권자 못지않다. 공약과 정책 경쟁을 하려해도 빌 공(空)자 쓰는 공약에 하도 속아 이골이 난 유권자들에게 먹히지 않는다. 유권자 누구도 관심을 갖지않는 뜬구름 잡는 공약을 두고 내 공약을 베꼈다는 등 드잡이를 하는 서글픈 코미디가 전개된다. 상대의 도덕성을 문제삼고 싶지만 내 흠결도 만만찮으니 네거티브에도 섣불리 나서지 못한다. 밀리던 한 쪽이 자신의 치부까지 들춰지는 위험을 감수하며 선공에 나서면 누구도 득을 보지못하는 이전투구가 벌어진다.

여야는 선거 때마다 심사 기준을 강화해 국민 눈높이를 충족할 후보를 공천하겠다고 호언했지만 늘 구두선에 그쳤다. 후보들의 전과 문제는 선거철 언론의 단골 레퍼토리가 돼왔고, 올해도 예외는 아니었다. 당내 경선은 올해도 공정을 의심받는 잡음과 불복으로 얼룩졌다. 지역 국회의원이나 당협위원장의 의중에 따라 당락이 결정되기 일쑤였다. 그 의중은 다음 총선에서 누가 더 내게 충성을 다해 표를 벌어줄 것이냐는 계산에 따라 결정된다. 국민 눈높이에 맞는 후보를 공천하겠다는 정당의 말장난에 속아 정치에 발을 들였던 순진한 인사들이 곳곳에서 들러리만 서다 퇴장하는 망신을 당했다.

서두의 의문으로 돌아간다. 이런 지방선거를 해야 하나? 누가되든 달라질 게 없어보이는 투표를 굳이 해야 하나? 많은 유권자들이 자문하고 있을지 도 모르겠다. 답은 절대적이다. 투표장에 나가 투표율을 최대한 높여 유권자의 존재감을 알리는 것이다. 지금은 아니더라도 때가 오면 그릇된 정치를 엄중하게 심판할 수 있는 시민의식이 살아 꿈틀거리고 있음을 보여줘야 한다. 회초리를 놓지는 않았다는 메시지를 강하게 전해야 한다. 그것이 유권자를 정치 혐오증에 빠지게 한 거대 양당의 담합에 경고장을 보내 각성을 촉구하는 유일한 길이다. 우선 방 한켠에 던져뒀던 후보들의 공보물 봉투를 찾아 열으시라. 꼼꼼히 읽고 누구든 선택한 후 투표장을 찾아 주권을 포기하지 않았음을 선언하시라. 그것이 시대착오적 이념과 연고, 이권에 묶인 유권자들만 투표하는, 그래서 선거판이 더 저급해지는 최악의 결과를 막을 유일한 방책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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