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흔
상흔
  • 김용례 수필가
  • 승인 2022.05.26 18: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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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김용례 수필가
김용례 수필가

 

오월의 햇살을 받은 초록세상이 싱그럽다.

길 떠나는 발걸음은 주책없이 초록의 싱그러움만큼 설렌다. 20년 지기 형님이 칠십 번째 생일이다. 생일 핑계로 봄나들이를 떠났다. 김천 청암사 인현황후 길을 걷고 맛있는 것도 먹으며 이 봄날을 보내기로 했다.

청암사는 1200년 된 역사가 살아 숨 쉬는 사찰이다. 비구니 승가대학이 있는 도량이기도 하다.

가람의 단청도 바랬고 오래된 사찰답게 큰 나무들이 자리를 지키고 있다. 법당 앞에 자목련도 나이가 많은 듯하다.

꽃을 빈틈없이 피웠다. 그조차도 도도하거나 화사하거나 예쁘기보다는 세월이 느껴져 경이롭다. 자목련나무 옆에 있는 단풍나무는 상흔이 너무나 심하여 차마 바라보기조차 민망스럽다.

어느 한부분도 성한 곳이라고는 없다. 오랜 세월 살아오면서 상처가 많았나보다. 내 어찌 그 사연을 상상이나 하겠는가. 체구는 외소하고 마디마디 옹이가 툭툭 불거져 나와 있다. 옹이가 썩어 들어가는지 피고름이 흘러 진물이 마른 것처럼 검은 딱정이가 덕지덕지 붙어있다. 그래도 살아있음을 증명이라도 하듯 잎을 틔워 끄먹끄먹 생을 잡고 있다.

숙종의 두 번째 왕비 인현황후는 희빈 장씨의 간계로 1689년 폐서인이 되었다. 퇴출된 5년의 기간 중에 3년을 이 청암사에서 기도를 하며 은거했단다. 임금의 아내, 중전이라면 민초들은 감히 범접조차 할 수 없는 사람이다. 한양에서 이 먼 산골 청암사까지 오는 동안 무슨 생각을 했을까. 중전의 자리를 지켜 내기위해 모진고초를 참고 또 참았을 것이다. 그럼에도 폐서인이 된 인현황후의 속이 저 단풍나무처럼 썩다 못해 문드러졌을 것이다.

칠십 번째 생일을 맞은 형님도 친정에서는 다정하신 아버님 어머님과 여러 형제의 맏딸로 부족함 없이 자랐다. 그런데 술 먹는 남편을 만나 마음고생 몸 고생을 많이 했다.

가까이에서 순탄치 않은 그녀의 삶을 보아왔다. 남편이 술을 마시고 들어오는 날은 폭언이 오가다보면 폭행까지 가는 날이 많았다. 두 딸을 두고 발 길이 떨어지지 않아 여기까지 왔다고 했다. 차마 나한테 말하지 못한 사연도 있을 것이다. 내가 아는 것만으로도 몸서리 쳐질 때가 있었다. 상처가 밖으로 나타났다면 저 단풍나무 못지않았을 것이다. 그래도 꿋꿋이 참고 견뎌 지금은 잘 살고 있는 형님의 모습이 보기 좋다. 그녀 뿐 아니라 누구든지 칠십 년을 사는 동안 평탄하게 꽃길로만 걸을 수는 없을 것이다.

비바람과 태풍과 추위를 견디며 살아간다. 단풍나무는 인현황후 같기도, 형님 같기도, 아니 젊은 날 보증을 잘 못서 오랜 세월 마음고생을 하며 살아온 내 모습 같기도, 어린 아들을 놓치고 힘겹게 살아가는 우리 동서 같기도, 힘든 병마와 싸우고 있는 내 아우 같기도 하다. 나무를 바라보는 내내 편치 않았다.

사람에게도 그 상처가 겉으로 드러난다면 아마 온전한 모습으로 살아가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생각해본다.

저 빤한 틈 없는 단풍나무보다 더 흉한 상흔을 가지고 살아갈 것이다.

여자의 삶은 친정을 떠나는 날로 시부모님, 남편, 자식을 위해 생을 다 바쳤다 해도 과언은 아니다. 어찌 여자의 삶만이 힘들다하겠는가. 한집안의 가장으로 살아가는 남자의 일생이라고 쉽게 가겠는가.

즐겁게 떠난 칠순여행지 청암사에서 인현황후와의 해후, 여자의 일생, 아니 우리의 삶을 생각했다. 화려하게 보이는 사람도 들여다보면 다 상흔이 있다.

상흔을 드러난 채 살아가고 있는 단풍나무는 `한생을 살면서 어찌 상처 없이 가는 삶이 있겠느냐 너만 아픈 것이 아니다. 서로의 상처를 보듬고 사는 것이 인생이다.' 라고 말씀하신다. 돌아오는 차안에서 형님도 나도 말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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