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타리, 그 너머로!
울타리, 그 너머로!
  • 구숙진 KPCA 그림책 지도사
  • 승인 2022.05.26 1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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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책 그릇에 담긴 우리 이야기
구숙진 KPCA 그림책 지도사
구숙진 KPCA 그림책 지도사

 

나는 세 남자의 팬이다. 영원한 팬이다. 1번 남자는 우물 안만 바라보던 나의 시선을 밖으로 향하게 해 줬고, 2·3번 남자들은 내 안에 잠자고 있던 용기를 밖으로 꺼낼 수 있게 해 줬다. 나의 남편과 나의 아이들이다.

어릴 적 난, 사물과 사람의 행동을 가만히 지켜보는 걸 즐겨 했다. 활동적이지 않은 온순한 아이여서 운동장과 들로 나가 놀기보다 혼자 꼬무락거리며 지내기 일쑤였다. 그랬기에 쾌활한 언니들은 밖에 좀 나가 놀라며 부추기기도 했다. 그랬던 나를 1번 남자는 산으로 강으로 데리고 다녔다. 싫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즐거웠다. 내 안에 있던 야생본능을 깨워 준 남자다.

어릴 적 난, 모르는 사람과는 눈도 마주치지 못하는 수줍은 아이였다. 그러니 시선을 늘 아래로 향했다. 좀 짓궂은 사람은 “버스비 없어?”라고 물을 정도로 바닥만 보며 다녔다. 싸움이 벌어져 술렁이는 곳이 있으면 먼 길로 둘러 갔고, 궁금한 것이 있어도 그냥 지나쳤다. 질문할 용기가 없기에 그랬다. 그랬던 내가 지나가는 사람을 붙잡고 묻기를 서슴지 않고, 시비가 벌어진 곳이면 자석에 끌리듯 다가가 디다보고라도 갔다. 내 아이들 2·3번 남자들이 있기에 가능했다. `엄마'라는 신세계였기에 가능했다. 나의 가족은, 내 안에 있던 배움에 대한 사랑과 사람을 대하는 용기 그리고 내 속에 내재 돼 있던 여타의 욕구를 일깨워 주고 `행'하게 했다. 내가 성장하도록 촉진제 역할을 톡톡히 해 준 것이다.

이렇듯, 움터 나오기 위한 내부의 노력과 적시에 오는 외부의 도움이 투합하여 동시에 일어나는 것을 일러 줄탁동시啐啄同時라 한다. 이 어려운 주제에 재미를 곁들여 쉽게 표현한 그림책이 있다. `옛날 옛적에 한 거인이 살았어요. 어찌나 몸집이 큰지 자기 집 안에서도 웅크리고 있어야 했지요. 밖으로 나가는 건 엄두도 못 냈고요. 집에는 다른 사람이 들어올 자리가 전혀 없었어요. …'라고 시작하는 <거인의 집/마야 슐라이더/놀궁리>이다. 거인은 인지하지 못하지만 내부에서는 일고 있다. 밖으로 향하려는 욕구와 관계 맺음에 대한 욕구가 일고 있다. 작디작은 거미가 거인의 집에 비집고 들어왔을 때조차도 거인은 알지 못했다. 거인의 지청구는 들은 척도 않고 거미는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줄을 친다. 거인이 재채기를 할때까지 치고 또 친다. 그 바람에 거인은 결국 재채기를 하게 되고 그 여파로 집이 무너진다. 거인은 그제서야 밖으로 나올 수 있었다. 거인에게는 거미가 밖으로 향하게 하는 자극이었다.

인간은 평생 배우며 산다고 한다. 그 배움은 스승과 제자 사이에만 이루어질 리 없다. 어른이 아이에게 그럴 수도 있고, 덩치의 크고 작음과도 무관하다. 한 걸음 더 앞으로 나아가는 힘을 받는 대상 또한 그렇다. 몸집이 커다란 거인은 몸집이 작은 거미에게서 자신이 만든 울타리와 틀이 있었다는 것을 깨우친다. 더불어 넓은 세상이 있다는 것도 알게 된다. 그리고 `내가 도와줄게!'라는 가당치도 않다고 여겼던 거미의 말과 도움에서, 지켜봐 주며 따듯한 손길을 내밀어 주는 방법도 배운다. 거인은 배우고 깨침에 그치지 않고 주변을 품기까지 한다.

거인이 그 작은 집에 맞춰 몸을 구겨가며 살았듯 지금의 내가 나의 모두라 여기며 살던 적이 있었다.그때도 그랬고 지금도 그렇고 나의 가족은 날 성장하게 한다. 의무감에서 비롯되었든 사랑에서 비롯되었든 그 연유가 뭐 그리 중요한가. 바라보는 시선에 따라 분명 달라진다는 걸 난 알았다. `엄마'라는 신세계! 나를 어디로든 나아가게 하는 힘이다. 그러니 어찌 그들을 사랑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난 영원히 1·2·3번 남자들의 팬이 되길 오늘도 작정한다. 그리고 새로운 곳으로 향하는 나의 발걸음에 힘을 줘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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