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양 남한강변의 불교 명소
단양 남한강변의 불교 명소
  • 이미란 충북문화재연구원 조사연구1팀장
  • 승인 2022.05.22 1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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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시선-땅과 사람들
이미란 충북문화재연구원 조사연구1팀장
이미란 충북문화재연구원 조사연구1팀장

 

남한강변의 단양군 가대면 향산리와 어상천면 방북리에는 불교 유적과 사찰이 있다. 얼마 전 우연히 단양 어상천면에 있는 문수사에서 우담바라 꽃이 피었다는 기사를 보았다. 3천 년 만에 한 번 꽃을 피워 매우 희귀한 우담바라는 불경에서 구원의 뜻이고, 꽃으로 여래의 묘음을 듣는 것이 이 꽃을 보는 것과 같고, 여래의 32상을 보는 것은 이 꽃을 보는 것보다 백만 년이나 어렵다고 했다. 또한, 여래의 지혜는 우담바라가 때가 돼야 피는 것처럼 작은 지혜로는 알 수 없고 깨달음의 깊이가 있어야 알 수 있다고도 했다. 이 같은 우담바라가 사월 초파일을 앞두고 불상을 닦던 한 스님이 문수보살의 오른손에 피어 있던 것을 발견했다는 내용이었다.

기사를 보면서 몇 년 전 문화재 조사를 위해 처음으로 갔던 단양 향산리 삼층석탑이 떠올랐고 문수사가 이 석탑과 매우 가깝게 위치한 것을 알 수 있었다.

문수사를 가려면 단양군 가대면 향산리 삼층석탑이 위치한 마을을 지난다. 몇 년 전 석탑으로 들어가는 지역에 쉼터를 조성하기 위해 조사를 한 적이 있었는데 고즈넉하고 주변의 산이 높아 풍광이 수려하다.

마을 입구에는 보물인 석탑이 마을에 있다는 내용이 쓰인 마을 자랑비가 있다. 이곳은 신라 눌지왕 때 묵호자가 이곳에 절을 지으라는 꿈을 꿔 향산사를 창건하였고 입적 후 부도를 세워 사리를 모셨다는 설화가 구전되어 전해진다. 그러나 향산사는 임진왜란 때 불타 버리고 석탑만 남아있고, 석탑은 1935년에 도굴로 탑은 해체되고 사리는 사라졌다. 향산리 주민들이 이를 안타까워해 다시 세워 지금 현재의 모습을 갖추었다고 한다.

탑은 신라 석탑 양식을 따랐으며, 대작은 아니지만 단정한 조형을 보여주는 작품으로 몸돌(석탑의 탑신을 이루는 돌)과 지붕돌(탑의 위를 덮는 돌)이 각각 하나의 돌로 이루어져 있다. 이러한 석탑은 충북 도내에 소재하는 흔치않은 통일신라시대 석탑으로 불교문화의 형성과정을 추론해 볼 수 있는 자료로 가치가 큰 문화재이다.

석탑을 둘러보고 향산리를 나와 남한강을 따라 남쪽으로 가다 보면 어상천면으로 넘어가는 가대교가 나온다. 가대교를 건너 어곡천을 따라 올라가면 깊은 산 속에 작은 사찰인 문수사가 있다. 문수사는 충청북도 단양군 어상천면 방북리의 두메산골에 자리 잡은 사찰로 암자에 가까울 정도로 소규모이지만 중요한 의미가 있는 곳이기도 하다.

이 절의 대웅전 양쪽에는 수령이 300년이 넘은 오래된 돌배나무가 있는데 이 나무에는 설화가 전해진다. 조선 영조 때의 암행어사 박문수가 이곳에서 공부하고 나서 과거에 급제하였으며, 이때 나라에서 돌배나무를 하사해 법당 옆에 심은 것이라 한다. 이에 매년 수확을 하고 나면 나라에 진상을 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당시 박문수와 얽힌 사연을 가진 종각이 대웅전 앞이 있었지만 2004년 화재 때문에 소실되었다고 한다. 또 전해지는 이야기 중 하나는 신라 때 창건된 강원도 영월군 보덕사보다 먼저 창건된 절이 이 칠봉산 문수사인데 이후 영월 보덕사 스님들이 매년 정월에 문수사의 부처님께 예배하고 공양물을 올리기 위해 방문했다고 한다.

이 사찰은 조선시대 때 중창불사가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는데 대웅전 뒤편에는 도광7년이란 암각이 있어 순조 때인 1827년에 창건이나 중창된 것으로 여겨진다. 그 뒤 1902년에 중창하여 오늘날에 이르고 있다고 한다.

우담바라 기사로 인해 단양의 알려지지 않은 사찰을 살펴보게 되었으나 이 불교관련 명소가 위치한 지역은 대한불교천태종의 총본산인 구인사와 소백산 자연휴양림, 온달동굴, 도담삼봉관광지와 명소가 다수 분포하고 있어 좋은 여행 장소로 추천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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