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이가 부르는 노래
강이가 부르는 노래
  • 장민정 시인
  • 승인 2022.05.18 17: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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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장민정 시인
장민정 시인

 

강이는 조손가정의 아이다. 아비가 대책 없이 사업을 벌리다 쫄딱 망한 뒤 외국으로 도피하면서 소식마저 끊기자 엄마와 여동생 진이와 함께 할머니 할아버지 품으로 오게 되었다.

어린 것들에게 아빠가 없는 것도, 갑자기 바뀐 환경도 이만저만이 아니었을 터, 남매는 머리 맞대고 앉아 열심히 놀다가도 깜짝 깜짝 할머니를 찾곤 한단다. 한시도 할머니를 떨어져 있기 싫어하는 어린 마음을 감싸 안듯 할머니는 가는 곳마다 어린 것들을 데리고 다니곤 한다.

우리 집에 방문할 때에도 물론 강이의 손을 잡고 문 앞에 서 있었다. 나는 강이를 말 없이 꼬옥 안아 주었다.

어떤 말도 할 수 없었다.

`안녕 내 사랑 그대여 이젠 내가 지켜줄께요, 못난 날 믿고 참고 기다려줘서 고마워요'

할머니의 부추김으로 해강이는 SG 워너비의 노래를 들려준다.

이제 겨우 6살짜리 애가 처량맞도록 애절하게 부른다. 워너비의 노래는 원래 좋아하기도 했지만 강이가 부르는 워너비의 노래는 한층 가슴을 후벼판다고 해야 하나?

비수처럼 아프게 마음을 찌르기도 하고 저리게도 한다.

`안녕 내사랑 그대여 이젠 내가 지켜줄께요. 못난 날 믿고 참고 기다려줘서 고마워요'

어쩌면 여러 가지 복합적인 사건들이 한데 믹서가 되어 다가왔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고 녀석 어쩌면 그렇게 꺾어가면서 또록또록하게 가사전달까지 하는지 놀랄 지경이다.

아비는 어쩔 수 없다 치고 어미는 이렇게 이쁜 것들을 두고 어떻게 도망쳤을까?

생계가 막막해서라면 좀은 동정할 수도 있겠지만 할머니 할아버지가 최소한의 돌봄은 해줄 수 있는데 어린것들 생각으로 그냥 좀 버티어 보지 엄마 역할보다 더 절실한 것이 도대체 뭐라고….

나는 강이 엄마가 야속하다. 천사 같은 어린 것들 떼어두고 어디서 행복을 찾을 수 있다고, 어쩌면 밤마다 소리 없이 눈물을 삼키며 괴로워할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든다. 그래도, 아이들을 위해서 자신의 행복은 뒤로 미루는 것이 어미인 것을….

할아버지 차에 동승하여 바람 쐬러 다니는 기회가 많아서 할아버지가 좋아하는 워너비의 노래를 접하는 기회가 많았다는데 언제부턴지 차에만 오르면 스스로 이 노래를 틀어놓고 따라부르기 사작했단다.

`못난 나를 믿고 참고 기다려줘요, 고마워요 안녕'

...그대여, 이젠 내가 지켜줄께요.


“와, 해강이 노래 너무 잘 부른다. 너무 잘해서 눈물이 다 나네,”
“진짜요? 어디 봐요.” 내 눈을 들여다보더니 
“진짜네, 정말 내가 그렇게 노래 잘 불러요?.
”그래, 너 같은 꼬맹이가 부른 노래 중에서 이거야,“ 하면서 엄지손가락을 펴 보여주었다.
”음, 강아 내가 네 제1호 펜이 되겠어, 싸인 하나 해줄래? 글씨 쓸 줄 아니?“
”그럼요,“ 으쓱해 한다.
나는 가지고 있던 A4용지를 접어서 내밀고 받아쓰라고 했더니
<김 강 , 1호 장 할머니 사랑해요.> … 이렇게 적어서 내게 준다.
”제1호 펜 잊지마세요. 열심히 노래 부르고 훌륭한 사람 되어야 해요.“
모자 챙을 만지작거리는 강이는 무척 자랑스러워 보인다.
강아, 힘내라, 잘 커다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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