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원등
소원등
  • 김경순 수필가
  • 승인 2022.05.17 17: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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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의 문앞에서
김경순 수필가
김경순 수필가

 

작은 손으로 소원을 적느라 바쁜 초등학생 등 뒤로 엄마로 보이는 여인이 속삭인다.

“공부 잘하게 해달라고 써”

그 옆에서 자신의 소원을 적던 아들은 힐끔 그 여인을 올려다보더니 이내 자신의 마음을 적은 쪽지를 소원등에 붙이고는 그곳을 물러 나왔다. 아들은 조금 전에 곁에 있던 아이 엄마가 영 못마땅한가보다.

“공부가 다가 아닌데 왜 그럴까?”

“엄마도 예전에는 그랬어. 아마 저 엄마도 아직 어려서 그럴 거야”

초파일을 맞아 절 마당에는 화사한 연등이 꽃처럼 주렁주렁 피어났다. 작년까지만 해도 코로나로 인해 절을 찾는 발걸음이 그리 많지 않았다. 올해는 방역 완화로 인해 사찰마다 다시 활기가 도는 듯하다. 그래서일까 이곳 미타사도 올해는 예전에는 보이지 않던 큰 소원등을 석탑 옆에 마련해 놓았다. 소원등은 어느새 소원을 적은 종이로 빼곡했다. 아들이 쓴 소원을 살짝 훔쳐보니 우리 가족 모두 건강하길 바란다는 내용이었다. 언제 이리도 컸을까.

아들이 초등학교쯤이었지 싶다. 나는 그때 초·중등 아이들을 대상으로 논술교실을 운영을 했다. 그때는 일 년 한 번 씩은 논술하는 아이들과 함께 아이들 부모까지 참가시키는 문학기행을 진행하곤 했다. 문학기행을 가기 전 언제나 먼저 답사를 했었는데 그 해는 안동 하회마을이었다. 두 딸과 아들을 데리고 안동 하회마을 이곳저곳을 둘러보던 중 고택을 끼고 있는 고샅을 들어가게 되었다. 고샅 안쪽에는 600년을 넘게 산 아름드리 느티나무가 당당하게 서 있었다. 느티나무 주위에는 몇 줄의 새끼줄이 쳐졌는데 새끼줄마다 하얀 종이들이 빼곡하게 끼워져 있었다. 그 나무가 바로 소원을 들어 준다는 소원나무였다.

군중심리라고 했던가. 우리도 왠지 그곳에 소원을 적어야 할 것 같은 알 수 없는 압박감에 사로 잡혔다. 그리고 무엇보다 소원을 적은 하얀 종이들을 보니 정말 소원이 이루어질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나는 거의 끌고 가다시피 소원을 적는 책상으로 아이들을 데리고 갔다. 그리고는 빨리 소원을 적으라고 윽박질렀다. 그뿐이 아니었다. `공부 잘하게 해주세요, 좋은 학교에 들어가게 해주세요'라는 글귀까지 지정해 주었다. 그것도 모자라 나도 `아이들이 공부도 잘하고 좋은 학교도 들어가게 해 주세요'라고 적었다. 그 소원 종이들을 새끼줄에 빠지지 않게 단단히 끼워 넣고는 느티나무에게 비손을 했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다행히도 아들은 그때의 일을 너무 어려서인지 생각이 나지 않는 모양이었다. 아까는 얼마나 가슴이 뜨끔했는지 모른다. 그래도 생각해 보면 그때 하회마을에서 비손을 했던 것이 영 헛일은 아니었나 보다. 두 딸과 아들은 어느새 다 커 서울에서 직장을 잘 다니고 있으니 말이다. 올해는 부처님 오신 날이 어버이날과 겹쳤다. 딸들은 바쁜지 막내인 아들을 대표로 내려 보냈다. 연등을 달고 미타사에서 내려오는 길은 아름드리 나무들이 우거져 시원했다. 아들은 성큼성큼 걷다가도 내가 뒤처지면 천천히 발걸음을 늦추고 나와 보폭을 맞춰준다. 그러고보니 아들의 등이 아빠보다도 더 넓게 보였다.

풍수지탄, 자식은 효도를 하고 싶어 하지만 부모는 기다려주지 않는다고 했다. 그런데 내가 부모가 되어 보니 그 말이 다 맞는 것 같지는 않다. 커가는 자식들의 모습 하나하나, 예를 들면 부모에게 기쁨을 주었을 때는 물론이고 아프고 상처가 나고 그것을 이겨내는 모습, 사랑을 하고 헤어지고, 의연해지는 순간들, 자식들의 사소한 모습 모두가 부모에게는 행복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러니 아들이 소원등에 글을 적어도 나는 쓰려고도, 참견하지도 않았으리라. 이미 아이들의 모습을 보고 느끼는 그 자체가 내 소원이니 굳이 더 무엇을 바랄까. 아마도 내 가슴속에는 언제나 꺼지지 않는 소원등 하나가 나도 모르는 사이 밝히고 있었나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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