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마켓을 열다
프리마켓을 열다
  • 박명자 수필가
  • 승인 2022.05.15 1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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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의 한가운데
박명자 수필가
박명자 수필가

 

지난달 독서 모임에서 `옷장에서 나온 인문학'을 읽었다. 순면의 원료인 목화는 친환경 소재로 알고 있었다. 그런데 대량생산을 위한 목화 재배에는 독성이 강한 살충제와 엄청난 물을 소비했다.

유엔은 목화재배를 두고 “20세기 최고의 재난”이라 했으니 환경에 미치는 영향이 얼마나 컸는지 상상이 갔다. 책을 읽고 난 후 나는 마음이 불편했다, 그때 회원 중 누군가 프리마켓을 제안했고, 날짜와 장소가 정해졌다.

며칠 전부터 장롱 속을 살폈다. 많은 옷이 이야기를 담을 채 옷장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변변한 옷 한 벌이 없을 때가 있었다. 아들이 유치원 졸업할 무렵 집안의 형편은 말이 아니었다. 몇 년째 입고 나갈 윗도리 하나가 없었다. 졸업식을 앞두고 고민하다 이웃에 부탁해서 빌려 입고 참석했었다. 그 시절 옷 하나 살 때도 신중했지만, 외출복 하나 구입하면 귀하게 여겨 오래 입었다.

장롱 속에 잠자고 있던 옷가지와 신발, 책, 물건 등을 챙겨 들고 갔다. 먼저 온 사람들이 환한 얼굴로 맞아 주었다. 모두 한 보따리씩 들고 나왔다. 행거에 옷이 걸리고, 진열대에 물건들이 펼쳐졌다. 그럴듯한 프리마켓이 차려졌다. 명품매장을 방불케 한 마켓에는 없는 것 빼놓고 다 있었다.

싸게 사고 빠르게 버린다는 패스트 패션, 들판에 번지는 불처럼 타오르며 끊임없이 성장하지만 불꽃 아래에는 지독하게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우고 있다고 작가는 언급했다. 패스트 패션은 유행에 따라 소비자의 기호에 맞게 빨리 바뀌는 패션으로 가격은 최대한 낮추고, 빠른 시간에 많은 제품을 만들어 판매하는 데 목적을 둔 사업이었다.

값싼 노동력을 얻기 위해 방글라데시, 캄보디아, 미얀마, 인도 등에 사업장을 두고 있다. 인도 공장에서는 열두 살 남짓한 아이들이 새벽부터 밤까지 하루 열여섯 시간을 재봉틀에 앉아 일하다가 발각되기도 했다.

공장 관리자는 아프고 우는 아이들에게 매질했으며, 어른보다 적은 돈을 주고 더 많은 일을 시키기 위해 어린이들을 고용했다고 한다. 노동을 착취한 물건들은 소비자에게 싼값으로 공급되고 있었다. 박리다매의 대표적인 상품으로 일본의 유니클로, 호주의 밸리건, 영국의 탑샵 등이 있다.

내가 입는 옷을 만들기 위해 누군가의 노동이 정당한 대가를 받았는지 살펴볼 필요를 느꼈다. 또한 정의롭게 옷을 입고 싶다면 충동구매는 하지 말며 한번 산 옷은 오래 입어야 하겠다고 생각했다. 재활용하는 것 또한 환경에 이로울 뿐 아니라 내 경제에도 보탬이 됨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책을 덮으며 그동안 유행을 쫓고 명품을 선호하던 생각이 한 권의 책을 통해 인식이 달라졌다. 집안의 물건을 살피는 눈높이가 달라졌다. 상표도 뜯지 않은 주방용품과 옷, 쓰지 않는 등산용품 등 다음 마켓이 열리는 날 가져갈 것들을 체크한다.

마켓에서는 물건만 오고 간 것이 아니다. 작은 실천으로 환경을 되살리려는 마음도 함께 오갔다. 구입한 물건에 배려의 덤 까지 얻어 왔다. 환경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는 것을 알기에 회원들은 다음을 기약하며 프리마켓 문을 닫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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