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나쁜 날씨는 없다
세상에 나쁜 날씨는 없다
  • 정규호 문화기획자·칼럼니스트
  • 승인 2022.05.10 1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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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단상
정규호 문화기획자·칼럼니스트
정규호 문화기획자·칼럼니스트

 

“햇빛은 달콤하고 비는 상쾌하며 바람은 시원하고 눈은 기분을 들뜨게 한다. 세상에 나쁜 날씨란 없다. 서로 다른 종류의 좋은 날씨만 있을 뿐이다.”

서기 2022년 5월 10일의 아침을 19세기 영국 작가 존 러스킨의 <인생의 날씨>로 시작한다. 나름 대한민국의 20대 대통령 취임에 대한 덕담이겠다.

요 며칠 비다운 비가 내리지 않았음에도 무심천을 흐르는 물은 부족함이 없다. 해마다 모내기 철이면 물은 다른 곳에서 온다.

봄볕이 유난히 좋은 5월의 날씨는 600일 가까이 계속되던 차단과 격리에서 벗어난 해방의 기운을 누리기에 더없이 좋다. 그러나 마스크를 벗고 모처럼 자유를 만끽하기에는 자외선이 두려운 사정도 있다.

비는 어느 계절이건 고소한 기름 냄새를 쫓아 전집으로 막걸리 순례를 부추기지만 축축한 기운이 성가시기도 하고, 바람은 기온에 따라 몸을 잔뜩 움츠리게 하는 심술도 있다. 게다가 폭우를 동반한 태풍이라도 몰아닥치면 이를 반가워할 이가 어디 있겠냐만, 그런 모진 비바람마저 하루 이틀 견디고 나면 어지럽고 탁했던 기운이 가시고 청량한 대기를 선사하는 순기능이 있다. 한겨울 눈 내리는 풍경은 고요함과 더불어 포근하게 세상을 덮는 부드러운 기운이 있으나, 통행을 어렵게 하고 제설작업의 고단함도 무시할 수 없다.

존 러스킨의 <인생의 날씨>는 이런 세상의 모든 좋음과 나쁨, 평온과 불편의 처지를 초월하는 긍정의 효과를 말한다.

1%에도 미치지 못하는 당락의 결과를 새삼 들추어 무엇하랴. 서기 2022년 5월 10일. 누군가들에겐 세상 모든 것을 다 가진 듯하고, 모든 도전을 이겨냈으며, 어쩌면 세상 모든 것의 가장 꼭대기를 차지한 것처럼 도취 되었을 날에.

다만 오늘 하루 기쁨을 만끽하는 대신 이제부터 당선자와 인수위라는 무제한적이고, 별다른 제약이 작용하지 않는 중간지대를 벗어나 당사자로서의 거대한 책임감과 맞닥뜨려야 하는 운명임을 단 일분일초라도 외면할 수 없는 날은 시작되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인한 전쟁의 계속과 그로 인해 우리나라에도 엄습하는 식량과 고물가 위협은 결코 먼 나라의 이야기가 아니다.

그런 위태로운 국제질서와 함께 남북한의 극단적 대치 상황 또한 심상치 않으니, 새 정부의 출범이 국민의 불안을 떨쳐버리기에는 미치지 못하는 듯 하다.

상하이에 이어 베이징까지 위태롭게 하는 코로나19의 봉쇄 위험이 서해를 건너 언제 우리 삶을 또다시 암울하게 할지도 모르는 현재진행형이라는 사회적 각성 역시 절실하다. 길었던 차단과 억제에서 벗어나 겨우 해방의 봄날을 누리던 뒤끝이기에 더 그렇다.

기후위기와 탄소중립의 전 지구적 근심의 초침이 크게 빨라지는 당장의 과제 또한 혁신적인 구조와 의식의 전환이 아니면 선택의 여지가 없다는 점도 쉽지 않은 출발을 예고하고 있다.

존 러스킨의 긍정적 <인생의 날씨>에도 불구하고 지금 우리 사회는 햇빛과 비, 바람과 눈에 이르는 세상의 모든 날씨가 달콤하고 상쾌하며, 시원하거나 들뜨게 하지 못하고 있다. 오히려 따갑고 불쾌하며, 춥거나 너무 덥고, 또 무거운 기운이 새록새록 도사리고 있다.

뉴스를 보지 않거나 보고 싶지 않다는 생각을 가진 사람들 역시 만만치 않으니 절반 정도의 기대가 나오는 여론조사가 헛일이 아니라는 것 쯤은 무시할 수 없는 현실이 되고 있다.

무시하거나 무시 받는 세상에 반응하는 방식은 대체로 무관심으로 나타나게 된다. 어찌 된 일인지 거리에 태극기가 내걸리지 않고 새 정부 출범에 대한 기대의 기운이 크게 느껴지지 않다는 것은 불행한 일이다. 희망의 새로운 출발의 자리가 진영의 교체와 기득권의 견고한 지배로 채워지는 것은 결코 우리가 바라는 조국이 아니다.

서기 2022년 5월 10일 노르웨이 출신 EDM 뮤지션 알렌 워커(Alan Walker)의 를 들으며 마음의 평화를 찾는다.

Did you feel us? Another start, you fade away. 우리가 느껴지나요? 또 다른 시작, 희미해지는 그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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