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어짐에 익숙해진다는 것
헤어짐에 익숙해진다는 것
  • 반지아 수필가(괴산 청안초 행정실장)
  • 승인 2022.05.08 19: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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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가는대로 붓 가는대로
반지아 수필가(괴산 청안초 행정실장)
반지아 수필가(괴산 청안초 행정실장)

 

파란 하늘만 봐도 보석 같은 웃음을 쏟아내고 교복이 가장 잘 어울리던 우리들은 교생선생님의 마지막 수업이 있던 날, 선생님의 인사말이 시작도 되기 전에 눈시울을 붉혔다. 눈맞춤만으로도 아쉬움을 넘어선 슬픈 마음이 전해지는 듯 선생님의 콧방울도 붉게 물들고 겨우 첫 마디를 내뱉은 목소리는 아득히 잠겨있었다. 그날 교실 창문을 넘어서 복도까지 우리들이 훌쩍거리는 소리가 가득한 건 모두에게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우리는 비록 얼마 안 되는 짧은 시간이었지만 함께 했기에 주어지는 헤어짐에 슬퍼하기를 마다하지 않았다. 이뿐만일까. 우리들은 학년이 올라가며 친한 친구와 같은 반이 되지 않으면, 쉬는 시간마다 서로의 반으로 찾아가며 아쉬운 마음을 달래곤 했다. 어림잡아 열 걸음이면 닿을 수 있는 곳이었지만 한 공간에 있지 않다는 이유로 한 글자 한 글자 정성스레 마음을 담아 꾹꾹 눌러쓴 편지를 쉬는 시간에 전해주고는 교실로 돌아와 남몰래 슬며시 웃음을 짓기도 했다.

그때의 우리가 어느새 선생님의 나이가 되고, 그 나이를 넘어서는 동안 수많은 만남과 헤어짐이 있었다. 만남이 두근거리는 설렘과 입꼬리가 저절로 올라가는 기쁨을, 헤어짐이 진한 아쉬움을 전해주는 동안 우리는 너무도 자연스럽게 서서히 어떤 것을 잊어갔다. 헤어짐을 슬퍼하는 방법이다. 언제부터인가 이별의 순간마다 너도 나도 할 것 없이 모두가 술 한 잔에 함께한 시간을 모두 담아 과거로 털어버리려는 듯 열심히 마시고, 다음날이면 그 시간들이 마치 없었던 것처럼 아무렇지 않게 일상을 맞이한다. 마주 보며 웃었던 순간들, 같이 힘써왔던 나날들, 가끔은 부딪히고 엇갈려도 결국은 대화로 서로를 이해하려 했던 노력들은 너무도 쉽게 봄이면 창가에 쌓이고 쌓여도 걸레질 한 번에 흔적조차 남지 않는 송홧가루처럼 지워버리는 것이다.

언젠가 맞이한 누군가의 송별회, 그 자리의 주인공은 끝내 눈물을 훔쳤다. 짧다고도 길다고도 할 수 없는 어설픈 기간속에 그리 가깝지도 멀지도 않게 그녀를 바라보고 있던 나는 그 당시 그녀의 슬픔을 이해하지 못했다. 그녀는 모두가 퇴근한 시간에도 혼자 사무실을 종종 지켜야 할 만큼 일이 많았고 스스로도 버거워하는 모습이 눈에 보였다. 되레 이곳을 떠나 새로 가는 곳에서는 일에 대한 부담을 조금 내려놓고 즐거운 직장 생활을 할 수 있을 텐데, 하는 생각이 머릿속에 가득해 그녀의 감정에 공감할 수 없었다. 그렇지만 그 후 마주한 인사발령마다 그녀의 모습이 계속 생각났다. 너무나도 궁합이 잘 맞아 근무 기간 내내 마음을 편하게 해주었던 직원이 떠나갈 때도, 시시때때로 부딪혀 원수가 따로 없다고 생각한 직원이 자리를 옮길 때도 혹은 내가 새로운 자리로 갈 때도 그녀가 훔친 눈물이 떠올라 마음을 콕콕 쑤셨다.

그리고 깨달았다. 몇 번을 겪어도 적응되지 않는 아픔이 있듯이 누군가 예정되거나 혹은 예상치 못하게 떠나가는 순간에, 가는 사람도 남겨지는 사람도 헤어짐을 순수하게 슬퍼하지 않는 모습과 혹여 누군가 슬픈 감정을 드러낼 때면 그 모습이 이상하게 취급되는 현실에 나는 적응하지 못하고 있었다는 것을. 어른이 되었으니 그렇게 해야할 것 만 같은 부담감에 무던하게 헤어짐을 마주할 수 있는 척하는 동안 가슴은 쩍쩍 금이 가고 있었다.

앞으로 남은 삶을 사는동안 우리는 또 얼마나 많은 이별을 마주하게 될까. 어떤 이별에는 눈물이 꼭 필요하다. 또한 이별이 필연적으로 가져다주는 슬픔을 있는 그대로 표현하는 것도 결코 나쁜 선택이 아니다. 울고 싶으면 울고 웃고 싶으면 웃는 아이들은 알고 어른들은 모르는 척하는 이 진실이, 우리의 마음이 더 모나기 전에 모두에게 당연한 진리가 되길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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