줄어드는 둥지
줄어드는 둥지
  • 김기자 수필가
  • 승인 2022.05.03 1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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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김기자 수필가
김기자 수필가

 

현관문을 열고 들어온다. 뒤따르는 남편의 얘기에 갑자기 한 대 얻어맞는 기분이 되고 말았다. 솜방망이처럼 가볍게 날아온 한 마디였지만 생각해보니 지나칠 일은 아닌 것 같다. 지금은 우리 둘이 이 문을 열고 들어와도 언젠가는 혼자서 들어서게 될 거라는 소리가 의미심장해서다.

대뜸 내가 받아치고 말았다. 당신이 먼저 떠나면 난 무서워서 혼자 이집에 못산다고 했다. 당연한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앞일을 어찌 알겠는가. 내가 먼저 떠날 수도 있는 일, 장담을 할 수 없는 노릇이다. 아무렇지도 않게 태연한 듯 보내는 시간 속에서 그래도 머릿속에는 생각의 너울이 파도를 타기 시작한다.

둥지가 점점 줄어드는 것을 어찌 막으랴. 이렇게 형체를 가진 집부터 허전해지고 있을 뿐더러 결국은 영혼과 육체마저 삭막해지고 바스러질 상황에 이를 것이 너무도 뻔해서 그렇다. 외로움과 두려움의 극치마저 지금 주변에서 흔히 일어나고 있는 것을 보게 되지 않던가. 피하고 싶은 길이어도 우리는 어쩔 수 없이 그렇게들 가고 있다.

노령화가 급속하게 이르러 있는 현실이다. 어디를 둘러보아도 요양원이라는 현판마저 눈에 가깝다. 쓸쓸한 기운의 정경들이다. 그 안에 있는 생명들은 차츰 세상과 멀어져 간다는 사실을 어떻게 받아들이며 지내고 있을까. 미래의 내 모습을 보는 것만 같아 염려가 쌓여간다. 자의든 타의든 어쩔 수 없이 그곳에서 살며 무슨 생각을 하는지 어디를 응시하고 있는지, 오히려 내가 먼 하늘을 향하는 일이 잦아지기 시작했다.

줄어드는 삶의 부피를 인식한다. 마음을 가다듬으며 다시 바라보기로 했다. 항상 허락된 반경을 지키며 힘닿는 데까지 다듬는 일에 몰두한다면 염려의 언덕도 완만해져 가리라 믿고 싶다. 끝까지 아등바등 살고 싶다는 욕망이 아니다. 초연하게 갈 길을 가노라면 생의 끝부분에 이른다 해도 평화를 얻지 않을까 해서다. 과연 어떻게 살아야 그런 모습이 될까.

한편 늘어나는 삶의 폭도 있다. 쉽게 든다면 손주들의 재롱을 보면서 느끼는 것들이다. 사람들은 흔히 그것을 두고 삶의 비타민이라는 우스갯소리를 한다. 맞는 말인 것 같다. 무엇이든 자꾸만 주고 싶고 품에 안아보고 싶은 여유로움이 더해가니 그 또한 즐거움의 마당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단순하다 여겨도 순간순간 그것이 지나온 삶에 대한 보상이라 여기고 싶다.

이제 나의 주변을 찬찬히 살핀다. 지녀온 삶의 부피가 조금씩 마모되고 형체마저 변형되어간다는 사실을 인정할 때이다. 체념이 아니라 받아들여야만 한다고 가슴이 먼저 말을 한다. 이 모양 저 모양, 언제 이렇게 피부에 와 닿는지 예상치 못했던 지난날이다. 그러나 저 언덕너머에는 또 다른 형태로 채워지는 것들이 있다는 것을 다행이라 여긴다. 바로 세상을 바라보는 마음의 눈높이다. 그 높이가 자라나는 느낌과 함께 삶을 어떤 방향으로 지켜가야 할지를 주인공인 나와 합의하는 일에 몰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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