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나들이
봄나들이
  • 김태봉 서원대 중국어과 교수
  • 승인 2022.05.02 2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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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봉 교수의 한시이야기
김태봉 서원대 중국어과 교수
김태봉 서원대 중국어과 교수

 

사계절 중에 나들이 하기에 좋은 철을 꼽으라면 단연 봄일 것이다. 바람은 훈풍이고 온갖 꽃들이 피었다 지고 골짜기 물들도 졸졸 흐르고 향기로운 풀들, 새로 돋은 나뭇잎들이 초록의 향연을 연출하는 것이 봄이기 때문이다. 자고로 시인묵객들의 시흥을 절로 돋게 한 것도 봄이 으뜸이다. 송(宋)의 시인 구양수(歐陽修)도 예외는 아니었다.



풍락정 봄 나들이(豊樂亭游春)

綠樹交加山鳥啼(녹수교가산조제) 푸른나무 얽히고 산새 우는데

晴風蕩?落花飛(청풍탕양낙화비) 비 갠 뒤 일렁인 바람에 낙화가 휘날리네

鳥歌花舞太守醉(조가화무태수취) 새들은 노래하고 꽃은 춤추고 나는 취했는데

明日酒醒春已歸(명일주성춘이귀) 내일 술 깨면 봄은 이미 돌아갔으리라



풍락정(豊樂亭)은 시인이 주(?州 지금의 安徽省) 저현(??)) 지주(知州)로 있을 때 저주 남서쪽 풍산(豊山) 아래 맑은 샘물이 솟아나는 부근에 세운 정자라고 한다. 정자의 이름은 산 이름에서 취한 것이지만, 봄의 흥취를 느끼게 하는 중의적 명칭에 시인의 풍류 취향이 잘 들어난다. 천하 제일의 풍류객인 시인이 봄을 맞아 나들이에 나선 것은 전혀 이상할 게 없다. 정자가 위치한 풍산은 봄이 무르익어, 녹색 나뭇잎이 제법 무성하고 그 속에서 산새들이 재잘거린다. 눈에 보이는 것도, 귀에 들리는 것도 모두 흐드러진 봄이다. 성숙한 봄의 느낌에 바람과 낙화가 빠질 수는 없다. 비가 막 그치어 맑아진 날에 바람이 물결처럼 일렁인다. 이 바람을 타고 떨어진 꽃잎들이 허공을 맴돈다. 몽환적인 봄의 장면이다. 봄에 빠지고 술에 취한 시인에게 새의 울음은 단순한 울음이 아니고 노래이다. 꽃잎은 떨어지는 게 아니고 춤을 추는 것이다. 모두가 시인을 위해 봄이 연출하는 공연이다. 시인은 술이 깨고 나면 봄의 공연도 끝날 것을 아쉬워 하는 것으로 글을 맺는다.

봄은 나들이의 계절이다. 겨우내 웅크렸던 가슴을 활짝 펴고 들로 산으로 나서기만 하면, 삶의 활력이 절로 솟아나는 것을 누구나 느낄 것이다. 봄의 시간은 결코 길지 않기 때문에, 봄을 즐기려면 부지런해야 한다. 차일피일 미루다가는 봄은 흔적도 없이 사라질 테고, 그 때 가서 아쉬워 해야 아무 소용이 없다. 봄에 가장 챙겨야 할 일은 봄을 즐기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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