뒷문으로 태어나 앞문으로 나가기
뒷문으로 태어나 앞문으로 나가기
  • 배경은 단재기념사업회 사무국장
  • 승인 2022.05.01 19:3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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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가는대로 붓 가는대로
배경은 단재기념사업회 사무국장
배경은 단재기념사업회 사무국장

 

“요즘, 민들레가 한창이잖아, 특히 보도블록 사이사이에 작은 민들레가 올라와 있는 걸 보고 피해가야지 하고 발을 다른 곳을 옮겨가다 보니 이름 없는 풀을 밟고 있더라구” 민들레는 밟으면 안 되고 이름 없는 풀은 밟아도 되는 자신의 이기심에 새삼 놀랐다고 지인을 말했다. 이름을 지어 부른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아니, 안다는 것은 어떤 신호일까? 이름이 없다는 것은 `없음'의 존재로 산다는 것인데 스스로 알든 모르든 `없음'의 존재는 한순간 한순간이 고군분투의 삶일 것이다. 그러나 지금껏 어떤 종속과목에도 속하지 않는다고, 이름이 없었다고 존재 자체가 사라지지는 않았다. 하지만 이름이 있다는 것은 확실히 자신에게 좋은 일인 것은 분명하다. 우리는 태어나 누군가로부터 이름을 부여받고 산다. 또한, 살다 보면 무엇에게 이름을 부여해야 할 때가 있다. 다케시타 후미코가 쓰고 마치다 나오코가 그린 `이름 없는 고양이'는 길고양이로 태어난 이름 없는 고양이가 스스로 이름을 짓기 위해 애쓰며 자신의 존재를 알아가는 과정을 그린 이야기다.

멜론색 눈을 가진 길고양이는 자신의 이름을 직접 짓기 위해 동네 여기저기 돌아다닌다. 다른 고양이들의 이름의 이유를 들으면서 자신에게도 그런 사연 있는 이름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가진다. 우리의 태몽처럼, 이름의 풀이처럼 사연 있는 이름은 존재를 꽤 근사하고 그럴듯하게 만들어 준다. 어쩌다 태어나 이름하나 없이 자란다는 것이 자신에게 옳지 않다고 인식하는 순간 이름 없는 고양이는 세상 밖으로 나갈 준비가 된 것이다. 내 앞엔 나만의 생이 있다고 믿는 것처럼. 생각해보면 이름의 결정적인 역할은 누군가 내 이름을 불러줄 때 빛을 발한다. 어쩌면 길고양이는 이름을 불러줄 `그 누군가'가 필요한 것인지도 모른다.

이름 없는 풀은 인간에게 불리지 않을 것이다. 그것이 어디 특효가 있다거나 레시피를 풍부하게 한다면 모를까. 이것은 순전히 인간의 관점이다. 자연은 이름이 있든 없든, 귀하든, 천하든 다 같이 먹이고 입힌다. 바람의 작은 숨조차 어디에나 공평하다. 있는 것은 있고, 없는 것은 없다고 말한 고대 철학자 파르메니데스는 `모든 것은 존재로 가득 차 있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소통의 수단으로 편하게 이용되는 `이름'이 존재 자체를 비춰주지는 않는다. 이름이 없어도 존재는 그것으로 충분하기에. 자기 이름을 짓고 싶었던 길고양이는 어둠의 길목에서 `아기 고양이'에서 그냥 `고양이'로 살아갈 수는 없다는 각성이 일어났다. 이 때문에 자신을 밝은 빛으로 인도하며 다른 고양이는 주인이 지어주는 이름을 스스로 짓고 싶어 했을 것이다. 자신에게 없는 것을 채우기 위해 세상 속으로 뛰어든, 지금도 어딘가 있을 이름 없는 고양이 얼굴을 한 모든 영혼에게 안부를 묻고 싶다.

얼마 전, 지인이 괴산 목도에 농막을 올렸다. `소창다명'이란 이름을 지어 소개한 적이 있다. 여섯 평 작은 농막에 온통 창을 내어 빛이 들어오도록 지었다. 이름을 지어 부른다는 것은 마음을 내어 하루하루 소모되는 시간을 기꺼이 함께 하고 싶다는 의미다. 어쩌면 `함께'의 첫발자국이 자신만의 이름을 지어 부르는 것이 아닐까 생각하며 나도 집에 있는 여러 애착 물건에 이름을 지어 부르는 것을 깨닫게 된다. 그것의 고유명사가 아닌 내가 지은 이름은 나만이 기억하고 추억하는 소중한 무엇으로 재탄생한다. 무엇인가를 마음에 가득 들이는 일, 길섶의 작은 풀에 이름을 지어 부르는 일, 세상을 더욱 사랑하는 일일 것이다. 후미진 공간에서 태어나는 모든 생명에게 알은체하며 봄을 보내고 싶다. 세상은 존재로 가득 차 있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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