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씨 진짜 좋다
날씨 진짜 좋다
  • 김용례 수필가
  • 승인 2022.04.28 17:5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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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김용례 수필가
김용례 수필가

 

밤새 비가 내렸다. 마당이 초록초록, 싱그럽다.

비가 내린 마당으로 장화를 신고 나갔다. 올해 처음 피는 백 목단 한 송이가 꽃잎을 조심스럽게 열고 있다. 바가지로 떠 먹여주는 물로는 힘을 키울 수가 없었는지 꽃들이 창백했었다.

꽃 한 송이 나무 한 그루 보기 좋게 키워내는 일이 쉽지 않다. 하늘이 도와줘야 좋은 풍경을 볼 수 있다. 어제는 비가 내렸고 오늘은 햇살이 곱게 마당에 내려와 있다. 나도 습기의 관능에 몸과 마음에 생기가 돈다.

내게 사월은 특별하다. 사월에 결혼했고 시부모님과 이별도 사월에 했다.

그날도 오늘처럼 봄볕은 따스하고 부드러웠다. 주말이었다. 온 가족이 모여 아침을 먹고 시부모님은 작은 아버님생신모임으로 작은 아버님 차를 타고 진천으로 향하고 애들은 학교 도서관으로, 나는 문학회 행사장이 있는 무심천으로 각자 바쁜 주말을 보내기 위해 집을 나섰다.

바람은 따스하고 햇살은 눈 부셨다. 무심천에 벚꽃은 절정을 이루고 한 치의 오차도 없는 화창한 봄날이었다.

집을 나선지 한 시간이나 지났을까, 전화가 왔다.

시부모님이 타고 가신 차가 사고가 났다는 것이다. 그 봄날 시부모님을 한날한시에 봄볕 속으로 영원히 떠나셨다.

우리는 그렇게 인사도 못한 채 영영 작별했다. T.S 엘리엇이 잔인한 사월이라 했던가.

나는 언 땅에서 라일락꽃이 피어나고 죽은 가지에서 새싹이 나오고 꽃이 피어 잔인하다는 말은 사치로 들린다. 다른 사람들에게는 더없이 아름다운 날에 우리는 기가 막히게 잔인한 이별을 했다.

우리 집 마당에 꽃이 피면 꽃을 좋아하시던 어머님 생각에 코끝이 시큰거린다.

지난 주말에 10주기 제사를 지냈다. 예쁜 사월, 아름다운 사월, 사월에 대한 온갖 찬사가 쏟아져도 우리 부부에게는 봄날의 아픈 상처다. 그리움이다.

10년 전 사월에는 꽃이 피는 것이 야속하게 느껴졌었다. 마음이 지옥이면 꽃도 지옥의 저승사자로 보이고 마음이 천국이면 길가에 버려진 휴짓조각도 꽃으로 보이는 것이다.

며칠 전 오랜만에 문학단체에서 기행을 떠났다. 맑고 따뜻한 날씨였다. 오랜만에 떠나는 여행에 좋은 날씨만큼 회원들은 한껏 들떴다. 그동안 코로나19로 인해 단체행사를 치르지 못했다.

“날씨 참 좋다” 라는 말만으로도 환해지는 느낌이다.

너무나 오랜 시간 전염병으로 온 세상이 우울했었다. 좋았던 시절이 있었던가 싶게 움츠리고 살았다. 힘든 시절이라고 좋은 일이 없었을까. 헌데 무엇을 해도 좋았다. 라는 말을 못하고 살았기 때문에 좋았던 기억이 없는 것처럼 느껴지는 것이다.

날씨가 좋다고 느끼는 것은 오늘 내 기분이 좋다는 말로 들리기도 한다.

어찌 맑은 날만 좋은 날씨랴. 엊그제는 비가 내려 이웃과 커피를 마시며 한유한 시간을 보냈다. 이웃의 정원엔 온갖 꽃이 다 있다. 우산을 쓰고 정원을 걸으며 꽃 이야기로 시간가는 줄 몰랐다.

비가 내려서 진짜 좋은 시간이었다. 까끌막진 언덕에 올라가 있던 마음이 꽃밭같이 평온해지는 듯했다.

바람이 거칠게 부는 것도 까닭이 있겠거니 하면 참을 수 있다. 금세 지나갈 것을 믿는 것이다.

궂은 날을 살아 본 사람은 살짝 열어놓은 문틈으로 비집고 들어오는 햇살에도 따스한 감정을 느낄 수 있다.

세상은 초록으로 물들어 가는 아름다운 봄이다. 오늘도 눈 부신 햇살이 내 눈을 찌른다.

벚꽃도 우루루 다지고 마당엔 라일락, 붉은 작약, 흰 목단이 피고 있고 잔인한 사월은 떠나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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