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스승을 만나다
다시 스승을 만나다
  • 강석범 충북예술고 교감
  • 승인 2022.04.27 17: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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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산책
강석범 충북예술고 교감
강석범 충북예술고 교감

 

교사라면 누구나 초임발령으로 근무했던 학교가 늘 그립다. 나 또한 마찬가지다. 아쉽다면 나의 초임교 옥천 동이면의 작은 시골중학교는 벌써 20여년 전에 폐교되었다. 학교 금강가 오두막에서 자취했던 나는, 근무지를 읍내 고등학교로 옮긴 후에도 금강이 너무 좋아 오두막을 떠나지 않았다. 내가 사는 오두막은 그곳 중학교를 지나 한참을 깊숙이 들어가야 한다. 가끔 퇴근길에 중학교 2층 미술실에 불이 켜져 있으면 나는 반가운 마음에 차량을 잠시 학교로 돌린다.

그곳엔 초임교감으로 발령받은 양 교감 선생님께서 그림을 그리고 계신다. 내가 4년 동안 사용한 미술실이기도 한 까닭에 마치 고향에 온 느낌이다. 화사한 꽃들이 만발한 유화 그림을 만지고 계신다. “선생님~ 스타일이 좀 바뀌었네요?” “하하하 그런가? 이 동네 봄꽃들이 너무 예뻐 어느 한 녀석만 그릴 수 없더라구? 그래서 여러 색으로 표현하니 조금 추상적 형태가 나오는구먼? 제목을 `봄의 향연'으로 지었네. 어떤가?” 선생님께서는 당시 학교 숙직실서 지내시며 저녁에는 오래도록 미술실에서 그림을 그리셨다. 나는 퇴근길에 수시로 그곳에 들러 좋은 말씀도 듣고, 그림 이야기도 하며 창문으로 불어오는 실바람과 함께 추억을 쌓았다. 선생님께서 교장으로 퇴임하신지도 20여년이 다 된다. 여전히 왕성한 작품활동을 하시는 선생님을 며칠 전 의미 있는 전시공간에서 반갑게 뵈었다.

연세가 드셔 평소 입으시던 양복이 조금 커 보였고, 구두가 힘드신지 하얀색 운동화를 신으신 것 빼고는 예전의 모습 그대로시다. 예전부터 나를 볼 때마다 늘 칭찬해주신다. “작품 여전히 잘하고 계신 거지? 강 교감은 재주가 많아 조각 외에도 못 하는 게 없는 사람이잖아?” 언제나 같은 레퍼토리지만 또 언제나 민망하고 감사하다.

`다시 스승을 만나다'전 팸플릿 제목만 보아도 흐뭇하다. 충북교육문화원에서는 충북미술교육 명예회원전으로 미술교육을 위해 헌신하신 퇴임 선배님들의 전시회를 작년에 이어 두 번째 열었다. 퇴임 선배 교사들의 작품을 모아 전시한다는 개념은 가장 단순한 의미다. 실제 내면을 들여다보면 정말 대단한 전시회다. 40년 넘게 교사로 재직한 후 80세가 훌쩍 넘으신 선생님들께서 꼼꼼히 쌓아 올린 붓 자국들은 그림을 그리는 게 아니고 인생을 담고 계셨다. 젊은 작가의 패기에 견줄 만큼 활력은 담아내지 못하지만 잔잔하고 엄숙하게 그리고 깊은 내면의 색채를 오묘하게 던져둔다. 작품 앞에서 한참을 서 있었다. “와~ 진짜~~” 나도 모르게 감탄사가 배어 나온다. 양 선생님께서는 아마도 최근 울릉도에 다녀오신 듯하다. 이번 출품작 제목이 `울릉도의 여름'이란 20호 유화 작품이다. 흰 파도가 기암절벽에 부서진다, 마침 지나던 고깃배가 힘차게 그물을 당기지만 거센 파도는 쉽게 기회를 주지 않는다. 그 광경을 조용히 즐기듯, 뭍으로 연결된 바위들 틈으로 파릇파릇 바다 이끼들이 매끄럽게 자리를 잡고 있다. `파도 이겨라~ 고깃배 이겨라~' 마치 가을 운동회 응원단 같다. 강렬한 햇볕으로 정신마저 몽롱한 여름, 시원한 바닷바람이 아니었더라면 그림 속에서도 바로 질식했으리라. 선생님의 그림은 더하지도 빼지도 않았다. 당신 눈과 마음을 통해 보이는 대로 여름을 솔직하게 캔버스에 옮기셨다.

인사말을 위해 마이크를 잡으신 손이 잠시 파르르 떨리신다. “에~ 에~ 감사합니다. 그냥 뒷방 늙은이가 아니고 오늘은 내가 교사로 살아있음을 느끼게 됩니다. 다시 불러주셔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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