꿀벌과 민주주의
꿀벌과 민주주의
  • 정규호 문화기획자·칼럼니스트
  • 승인 2022.04.26 17: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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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단상
정규호 문화기획자·칼럼니스트
정규호 문화기획자·칼럼니스트

 

`아무래도 민주주의는 평화적이지 않다.'

한가로운 봄날의 들판에서 민들레꽃에 앉아 있는 꿀벌을 발견한 뒤 떠오르는 생각이 어처구니없다. 그런 생각이 든 것도 황당하지만, 꽃에서 열심히 양식을 모으고 있는 꿀벌을 보고 경이로워하는 현실은 처참하다.

`민주주의는 평화롭지 않다.'는 명제는 세상이 바뀐 선거를 치르고, 또 하나의 주권 행사라는 질곡을 거쳐 `운명'이 판가름 나는 결과만 보면 타당하기 그지없다. 총칼만 들지 않았을 뿐 당선의 기쁨이 아니면 사실상 죽은 목숨이나 진배없으니 `다수'라는 선택기준이 최강인 민주주의에 어찌 `평화'라는 대의명분을 붙일 수 있겠는가.

세상일은 이렇듯 우리가 막연히 품고 있는 보통의 생각을 무색하게 하는 일이 왕왕 있는데, `민주공화국'이라는 헌법정신 역시 이와 무관하지 않다. `주권이 국민에게 있고 국민의 의사에 따라 주권의 운용이 이루어지는 나라'의 기준이 온전하게 작동하는 일은 오로지 선거 때만 해당 된다. 중앙 정부에 대한 집중과 의존이 지나치게 삼엄한 우리나라의 경우는 특히 심하다.

그러므로 `다수결의 원칙'만을 막강하게 내세우며 한 표라도 이긴 편이 독식하는 민주적(?) 편견을 극복하는 공동체 질서 차원의 `공화(共和)'적 기능은 지방의 민주주의가 더 적합하다.

공자와 맹자는 의로움에 있어 이로움의 문제를 다루려 하지 않았다. 반면에 묵자는 이로움의 문제가 의로움의 문제와 구분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서로를 사랑하며 타인의 몫을 침범하지 않는 공동체를 이루기 위해 묵자는 강력한 정부, 국민의 삶 전반을 다루는 포괄적인 행정체계를 구축하고자 했다. 현실 자본주의 체제의 민주적 질서는 대체로 묵자의 견해를 추종한다.

작은 민들레꽃에 앉아 열심히 일하는 꿀벌을 보면서 평화롭지 않은 것은 극렬한 자본주의 체제의 민주주의 지배 질서에 대한 불안이 인간의 두뇌 회로 깊은 곳에서 작동되고 있음을 상징하는 것이다.

지난 겨울을 지나는 동안 우리는 지구의 끄트머리 한반도 남쪽 아주 쪼끄만 땅덩어리 안에서만 78억 마리의 꿀벌을 잃었다. 엄지손톱보다도 작은, 잃어버린 그 벌레의 마릿수가 78억 마리나 된다는 것을 과학적으로 실측할 수는 없을 것이다.

다만 텅빈 벌통의 숫자와 그 속에서 건강하게 인류와 공존했던 꿀벌들의 개체를 추산해 집계된 숫자가 현재 지구에 생존하고 있는 인류의 숫자와 비슷하다는 것은 섬뜩하다. 차라리 인류의 종말을 예고하는 전조증상이라는 불안이 확산되지 않음을 안도해야 할 지경인지도 모르겠다.

꿀벌의 엄청난 실종은 기후온난화 때문으로 서둘러 결론이 내려지고, 피해 양봉농가는 정부의 보상을 잔뜩 벼르고 있는데, 우리는 여태 피해는 그저 자연의 탓이고 수습은 돈으로 때우는, 미봉책에서 한 걸음도 전진하지 못하고 있다.

박쥐에서 비롯된 바이러스가 코로나19라는 이름으로 온 인류와 전 지구를 초토화시킨 팬데믹의 비극은 이제 겨우 그 터널의 끝에서 비춰오는 한 줄기 햇살로 들뜨게 하고 있을 뿐이다.

인류가 만물의 영장이라고 호언장담하고 있으나 실제로는 인류보다 훨씬 더 개체 수가 많은 꿀벌과 개미 등의 벌레에 의존하지 않으며 생존할 수 있는 길은 아직 요원하다.

지난 대선은 물론 이번 지방선거 역시 끊임없는 성장의 욕망은 멈추지 않은 채 표심을 자극하고 있다. 세금은 깍아주고 기업의 규제는 최대한 풀어주면서 오로지 경제 발전만을 향하는 중단없는 전진은 자본주의의 득세 이후 단 한 번도 멈춘 적이 없다. 오직 인간만이 지구에 살아남아야 하고 다른 동·식물과 광물, 물과 공기마저도 전부 인간만을 위해 희생되어야 하는 시대는 얼마나 지속될 수 있겠는가.

당장 눈 앞의 득표를 위해 성장을 멈추고 자연과 공존하면서 자연으로 돌아가는 공생공영의 길을 찾아야 한다는 선거 공약을 내세우는 후보는 스스로 낙선을 향하는 무모함으로 평가되면서 유권자들에게 외면을 받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누군가는 커다란 용기를 내야 하는 시간은 얼마 남지 않았다. 온전한 평화는 세상의 모든 만물에게도 주권이 있음을 깨달을 때 비로소 가능해진다. `바쁜 꿀벌은 슬퍼할 틈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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