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책(5)
산책(5)
  • 반영호 시인
  • 승인 2022.04.21 17: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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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반영호 시인
반영호 시인

 

농장 한쪽 컨테이너 뒤 산과 인접한 곳에 등나무를 심었다. 여름철 따가운 햇볕을 피해 쉴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 보겠다는 심산이었다. 아직은 어리지만 2~3년 있으면 좋은 쉼터가 될 거라는 기대감으로 3년생 튼실한 묘목을 사다 심었다. 등나무는 홀로 수직으로 클 수 없는 나무다. 감고 의지할 데가 있는 경우나 밝은 곳에 살 경우에만 마치 칡처럼 덩굴이 위로 높이 감고 올라가서 하늘을 뒤덮는다. 그런데 어두운 숲 속이나 감고 올라갈 형편이 안 되는 경우에는 지면에서 뿌리가 드러날 듯 말 듯하면서 옆으로 일직선으로 길게 달리듯이 사방으로 뻗어나간다. 그렇게 뻗다가 의지할 것을 만나면 그것을 감고 위로 솟구쳐 자란다.

봄에 심은 등나무에 지주대를 세워주지 못했었다. 좀 자란 뒤 제대로 된 시렁을 만들겠다는 생각이었는데, 감고 올라갈 곳이 없는 등나무는 사방으로 뻗어나갔다. 그러다 한 줄기가 소나무를 만났다. 등나무는 소나무를 타고 올라가 하늘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소나무 전체를 휘감아버렸다. 엄청난 세력인데 자세히 올려다보니 소나무를 점령한 것은 등나무뿐이 아니었다. 칡덩굴이 함께 어우러져 있다.

왼쪽 길 오른쪽 길 어느 길이 바르던가 모습은 비슷하나 본성이 서로 다른/칡 갈葛字 등나무 등藤字 꼬인 저 운명/오른쪽 감아올려 돌아가는 칡이나/왼쪽으로 에워싸는 고집통 등나무나/만나면 뒤엉키면서 제 신세를 옥죄는/비비고 쓸어안고 사랑해선 안 될 사이/하지만 뒤엉켜도 배려하는 삶도 있네 /억만 겁 세월 갔어도 어지러운 저 속내들

나의 둘도 없는 절친 권순갑의 시조 `갈등'이다. `갈등(葛藤)`은 `칡 갈(葛)'과 `등나무 등(藤)'이라는 뜻으로 칡과 등나무 모두 대를 휘감고 올라가는 성질이 있는데 칡은 오른쪽, 등나무는 왼쪽 방향으로 감기 때문에 이 둘이 같은 나무를 타고 오르게 되면 서로 목을 조르듯 얽히고설키게 된다.

이를 인생사에 비유해 목표나 이해관계가 달라 서로 적대시하거나 충돌하는 것을 의미하는 단어가 되었으니 참으로 의미심장한 표현이라 할 수 있다. 개인적으로 발생하는 것이든, 집단으로 발생하는 것이든 갈등은 모순과 대립 혹은 충돌이나 불일치와 연관이 있다. 갈등은 많은 사람에게 스트레스이며, 지속되고 고조될수록 부정적인 효과를 나타낸다.

인간이 이 땅에 출현한 이후 한 번도 갈등이 없었던 적이 없었기에 철학자, 종교인, 예술가를 비롯한 많은 사람이 갈등에 대해 논하고 나름의 해결 방법을 제안했다. 심리학자들의 연구도 빼놓을 수 없다. 사회적으로 큰 문제 그리고 개인의 심리적 갈등 해소방안을 찾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커피 한잔을 들고 연못가로 갔다. 오리와 기러기가 한가로이 노닐고 있는 자가 연못은 30평 남짓한데 각종물고기들이 살고있다. 일급수에서만 산다는 가제와 새우 산천어 외에도 붕어 잉어 향어 미꾸라지 동자개 등이 서식하고 있다. 낚시를 좋아해서 만든 연못으로 농사일을 하다 종종 짬을 내어 잎이 넓어 시원한 목련나무 그늘 아래에서 낚싯대를 드리운다.

팔순의 나이에도 왕성한 시작활동을 하는 박영서시인의 `호수앞에서'를 낭독하며 산책을 마친다.

호수 앞에 서 있다/오늘따라 더욱 아름다워 보인다/가을빛 때문만은 아니리라/물너울이 넘실거린다/내 마음도 출렁인다(중략)/생각나면 또 오마/보고프면 또 찾으마/아니, 돌아서면 금방 생각나고/미치도록 그리울 거야/이 호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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