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보다 꽃게
꽃보다 꽃게
  • 정명숙 청주문인협회장
  • 승인 2022.04.19 17: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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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정명숙 청주문인협회장
정명숙 청주문인협회장

 

봄이 익을수록 무장 무장 짙어가는 꽃 색이 화려하다.

나무들은 푸른 기운을 세워 바람을 타고, 높이 나는 새는 폐곡선을 그리며 즐겁다. 도저히 인간이 그릴 수 없는 무늬, 경이로운 풍경이 지천이다.

이즈음이면 나는 특별한 것으로 꽃을 피운다.

단단한 옷을 벗기면 맨살로 붉게 피어나는, 뜨거움에 겨우면 온몸에 열꽃을 피우는 바다의 봄꽃. 바닷속 모랫바닥에서 몸을 키워 봄의 전령사처럼 오는 암꽃게다.

큰아이는 탕을 좋아하고 작은아이는 양념게장을 좋아해서 오늘은 작정하고 비린내를 풍기며 꽃게를 잡고 있다.

가을에는 수게가 실하고 봄이면 붉은 알이 꽉 찬 암게가 무엇을 해도 맛있다.

꽃을 보려면 양념게장보다는 간장게장을 해야 보기가 좋다.

된장과 매운 고추만 넣어 탕을 끓여도 맛있고 찜통 속에 넣어 찌면 어떤 꽃보다 색이 곱다. 시각과 입맛을 충족시켜주는 꽃게를 제대로 먹으려면 두 손을 다 써야 한다는 것이 번잡스럽기는 해도 마다하지 않는다.

오래전 봄날, 주변에 꽃이 지천으로 피어나자, 모든 이들은 감탄하고 즐거워하는데 혼자만 울적했다. 무작정 떠나고 싶었다.

얼마 전 문우와 보고 왔던 동백꽃이 눈에 선하고 춘장대 바닷가 음식점에서 두 손과 입 주변을 벌겋게 물들여가며 맛나게 먹었던 꽃게 매운탕이 생각났다.

떠나고 싶을 때 동행할 사람이 곁에 있다는 건 얼마나 행복한 일인가. 마량에 가고 싶다는 말에 선득 운전대를 잡아주는 지인이 얼마나 든든하든지 지루할 사이가 없었다. 동백섬의 동백은 아쉽게도 툭툭 떨어진 꽃송이만 발밑에서 처연했다.

그래도 다행인 건 해변을 걷고 매운탕을 먹을 수 있다는 거였다.

늦은 점심상을 마주하고 앉았다. 냄비 가득 꽃으로 담겨 있는 암꽃게가 식욕을 돋우었다.

그날따라 조심스럽게 먹는 나를 바라보던 지인의 말이 지금도 잊히지 않는다.

“어려운 사람이나 남녀가 같이 오면 꽃게탕은 먹으면 안 되겠다” 디지털시대에 아날로그 감성인가. 그는 우스갯소리로 대화를 트기 위해 한 말일 터인데 왜 그리도 무안했는지 모른다.

60여 년 전에는 맞선을 보거나 사귀기 시작한 연인들은 하나같이 자장면은 먹지 말아야 한다고 했다.

자장이 입에 묻으면 혹여 단정하지 못하다는 말을 들을까 봐서 귀하고 맛있는 음식을 마다하고 내숭을 떨어야 했다.

작금의 시대에 이런 말을 젊은이들에게 하면 헛웃음을 웃을 터이나 나는 꽃피던 시절에 좋아하는 사람을 만나지 못해선지 안타깝게도 그렇게 낭만적인 내숭을 떨어보지 못했다.

그런데 늦은 나이에 꽃게 매운탕을 먹으며 내숭 떠는 여자로 보인 것인가.

봄철, 입맛을 돋울 꽃게를 사다 보면 동백꽃이 따라오고 춘장대 파도 소리가 함께 온다.

나보다 더 꽃게를 좋아하는 문우의 행복한 웃음소리가 붉은 동백꽃으로 피어나고 아날로그 감성으로 우울했던 마음을 환하게 비춰주던 지인의 순박한 미소가 그리워진다. 이 봄, 나는 꽃보다 꽃게가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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