벚꽃에 부침
벚꽃에 부침
  • 김태봉 서원대 중국어과 교수
  • 승인 2022.04.18 19: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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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봉 교수의 한시이야기
김태봉 서원대 중국어과 교수
김태봉 서원대 중국어과 교수

 

가을 들판에 메뚜기 떼가 스쳐 가듯이, 봄철 산야를 스쳐 가는 것은 벚꽃이다. 그 화사함과 풍성함은 봄의 주인공이 되기에 손색이 없지만, 잠시 폈다가 곧 져버리는 속성 때문에 인생의 무상함을 일깨우는 비탄의 꽃이기도 하다.

송(宋)의 승려 불광(佛光)은 일본 체류 중에 벚꽃을 보고 그 감회를 시로 남겨 놓았다.


벚꽃에 부쳐(題櫻花)

滿樹高低爛漫紅(만수고저난만홍) 만 그루 나무마다 높고 낮게 붉은 꽃 흐드러지게 피었고
飄飄兩袖是春風(표표양수시춘풍) 양쪽 소매가 흩날리는 것은 봄바람 때문이라네
現成一段西來意(현성일단서래의) 서쪽에서 부처님 오신 뜻 현세에 이루고는
一片西飛一片東(일편서비일편동) 한 조각은 서쪽으로 날고 한 조각은 동쪽으로 나는구나

매화가 이른 봄에 홀로 피는 꽃이라면 벚꽃은 봄의 한복판에 떼 지어 피는 꽃이다. 꽃의 수명도 현저히 차이가 난다. 매화는 한 달 이상 피어 있는 데 비해 벚꽃은 고작 일 주일을 살아내지 못하고 지고 만다.

시인의 눈에 들어온 벚꽃도 마찬가지였다. 만 그루나 될 정도로 한 데 모여 높은 가지 낮은 가지 할 것 없이 흐드러지게 피었던 것이다. 이렇게 한꺼번에 핀 꽃은 얼마 있지 않아 봄바람에 몸을 맡기어 공중을 날아다니다 결국 흙으로 돌아간다.

승려였던 시인에게 벚꽃은 부처님의 불법이 현실 세계에 드러낸 것으로 여겨졌는데, 이는 벚꽃의 현시성과 찰나성을 동시에 건드리는 절묘한 묘사가 아닐 수 없다. 한 잎은 서쪽으로 또 한 잎은 동쪽으로 떠도는 것은 마치 정처 없는 인생의 모습과도 같다. 얼핏 삶의 무상함을 느끼게 하는 듯하지만, 승려인 시인은 무상감 대신 부처님의 가르침을 깨닫는 장면으로 담담하게 응시한다. 요란하고 떠들썩한 벚꽃놀이와 대조되는 고요한 관조의 세계를 펼쳐 놓은 시인의 시적 내공에 감탄을 금할 수 없다.

벚꽃은 떼지어 잠깐 피었다가 화끈하게 지고 만다. 그래서 화려하고 성대하면서도 허무하다. 꽃은 열흘 붉음이 없다(花無十日紅)는 말이 딱 들어맞는 꽃이 바로 벚꽃인 것이다. 꽃에 취하고 술에 취해서 흥건하게 벚꽃에 빠져 보는 것도 훌륭하지만, 그 요란함에서 오히려 고요를 느끼는 관조도 빠질 수 없는 벚꽃의 매력이 아니던가?

/서원대 중국어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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