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이발소
그 이발소
  • 김경수 시조시인
  • 승인 2022.04.14 2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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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김경수 시조시인
김경수 시조시인

 

우연히 희미한 불빛이 눈에 들어 왔다. 길 건너 저만치 낯익은 이발소 안에 덩그마니 늙은 사내가 홀로 앉아 있었다.

세오가 한 때는 자주 가던 단골 이발소였다. 그 곁으로 한 발 다가가 보았다. 누리팅한 벽지에 시설물과 모든 것이 전과 다름없이 그 자리에서 그대로 낡아가고 있었다.

그런데 예전에 멋졌던 젊은 이발사는 어디 가고 지금은 어디선가 본 듯한 노인이 그 곳에 있었다. 옛부터 이발사는 언제나 단정한 옷차림에 반짝거리는 머리와 얼굴을 상표처럼 고객들에게 준수한 이미지를 보여주는 것이 그들의 신용이자 자긍심이었다.

세오가 한 때는 그 이발소가 아니면 그 어느 곳에서도 이발을 하지 않던 때가 있었다. 그런 그가 어느 날 우연하게 누군가를 따라 헤어샵에 갔다가 그곳으로 발길이 거듭 반복하는 동안 자연스레 그 이발소는 점점 기억 속에서 잊혀져 갔다.

세오가 그 곳에서 발걸음을 옮기게 된데에는 무엇 때문인지 그 이유가 분명하지 않았다. 오히려 이발사가 지나치게 깔끔하고 털끝만한 머리털마저도 용납하지 않으려는 철두철미함 때문에 투정을 부리듯 그에 대한 멀미와 반발이 세오를 종종 짜증나게 만들곤 하였다.

세오는 이발사에게 대충 넘어가자고 하지만 이발사는 그 말을 허락하지 않았다. 자신의 마음에 들지 않으면 세오의 의사와는 관계없이 마음에 들 때까지 머리를 다듬었다. 그렇다고 그것을 이유라고 묻고 싶지는 않았다. 거기에는 그와 세오와의 성격과 그 시대 속에 묻어온 그들만의 고집 같은 것이 있었다.

어찌 보면 세오가 새로 만난 미용사에게 그와 다름을 추구하는 유행을 쫓고 싶어 발걸음을 옮겼는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래도 그렇지 하나 둘씩 흐려져 가는 이발소의 풍경은 이런 날이 올 줄을 예감했는지 의문이 들었다. 어느 해 전까지만 해도 으레껏 이발소의 풍경은 각종 뉴스들이 총망라 되어 대화 속에서 비판을 쏟아내며 토론의 광장을 방불케 했다. 그리고 또 어느 이발소는 장기와 바둑을 두며 시간을 즐기는 곳도 있었다.

그 시절 이발소는 모든 남성들의 대화의 광장이자 낭만이 깃든 휴식처였다.

게다가 어떤 이발사의 경우는 고객을 재미있게 만들어주는 재담꾼이나 척척박사들도 더러 있었지만 그는 아니었다. 그래도 사람들은 그를 찾아 왔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누군가 떠나고 나면 그 자리를 이어가는 사람이 없었다.

왜 그럴까 시간은 이유 같은 것을 묻지 않았다. 다만 변화를 갈망하는 그 시대의 요구가 있었는지도 모를 일이었다.

또한 오늘날의 이발소라는 개념과 헤어샵의 개념은 다를 것 같지 않으면서 또 다른 이미지를 던져주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젠 주변에 이발소들이 하나 둘씩 추억과 기억 속에서 점점 모습을 지우며 가는 것만 같아 안타깝기 그지없었다.

희미해져가는 것이 어디 이 뿐이랴 수많은 것들이 우리가 모르는 사이 어디론가 자취를 감추며 눈에 뜨이지 않거나 기억 속에서 어렴풋이 맴돌다가 사라져가는 것을 보곤 한다. 그리고 떠나간 그 자리에는 새로운 존재의 등장을 알려준다.

존재한다는 것은 그 만큼 생존의 가치를 지녀야 한다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존재의 가치를 부여 받기 위해서는 그 시대의 요구를 쫓지 못하거나 변하지 못한다면 외면과 무관심 속에 눈에서 멀어질 수 있음을 알아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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