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 피는 날
꽃 피는 날
  • 안승현 청주문화재단 문화산업팀장
  • 승인 2022.04.12 19:0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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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의 문앞에서
안승현 청주문화재단 문화산업팀장
안승현 청주문화재단 문화산업팀장

 

먼동은 왜 그리 더딘지? 땅거미는 왜 그리 빨리 지는지? 너무나 짧은 주말, 주일이 지났다. 
꼭두새벽 일사불란하게 움직이고, 한나절, 때 이른 뙤약볕에 굴하지 않고 돌진했건만 주어진 시간은 너무나 짧다. 주말 저녁에는 ‘그래도 내일 하루가 더 있다!’ 주일 저녁에는 ‘결국 이틀이 지났구나’ 푸념할 시간도 없이 장갑을 벗어 흙먼지를 털었다. 빠진 일 없이 제대로 마무리되었는가? 가로등 불빛을 호위 삼아 둘러본다. 확인을 마치고 어두컴컴한 실내의 턱을 넘는다. 
이틀간 입었던 작업복을 벗는다. 체중계에 발을 올린다. 체중계는 뭐가 힘들었는지 숫자를 올리지 못한다. 체중계의 숫자가 현저히 줄었다. 끼니때가 됐으니 앉았다. 샤워하는 동안, 한 상 거나하게 차려졌다. 오가피 순, 방풍나물에, 돌미나리에, 부추에, 머위순에, 신선초에, 당귀순에, 차이브에 온통 초록 밭이다. 겨울을 나고 첫 수확한 나물이다. 입안에 침이 고여야 하는데 밥맛이 없다. 눈의 초점은 잃고 기진맥진이다. 숟가락질이 버겁다. 
밥상을 치우고 잠시 멍때림의 시간 후에 무슨 미련인지 뜰을 걷는다. 꽃이 많이도 피었다. 해를 거듭할수록 얼마나 더 수북할 수 있을까? 과시욕을 발하는 팥배나무 꽃, 녹색 점 하나 없이 온통 보라색을 팝핑하고 있다. 기다란 가지 끝까지 더없이 많은 꽃을 단 매화나무 꽃, 밤이 되어 꽃잎을 닫은 튤립, 밤에도 선연한 진달래와 매혹적인 명자나무꽃, 낮이나 밤이나 수줍게 닫은 듯 자그마한 부케를 닮은 머위꽃이 어두운 땅 위에 창연한 달빛이 되었다. 
매년 해를 거듭하며, 더욱 풍성하게 피는 꽃, 피고 이내 시들지만, 내년엔 더 화려한 꽃을 피울 것이기에 정성을 다한다. 지나간 내 젊음은 다시 피지 않는 걸 알면서 꽃을 피우게 하도록 젊음의 열정을 들였다. 연륜의 발자국과 손길로 매년 꽃은 더 화사하고 만발하다. 그러나 꽃이 한 창 피는 낮에 꽃을 즐기지 못했다. 잠깐잠깐 피었구나! 잘 커 줘서 고맙구나! 인사를 건네고, 또 거름을 주고 물을 주고 벌레를 잡아주고 가지를 쳐줬다. 
해를 거듭하며, 더욱 풍성한 꽃들에 벌이 찾아왔다. 여기저기에서 윙윙거리는 벌의 날갯짓 소리는 귀속에 들어앉았다. 보지 않아도 소리만으로 꽃의 상태를 안다. 밤이면 그윽한 향이 가슴 깊숙이 들어 꿀을 발라 놓았다. 꽃에 취해 열심히 일한다. 더 많은 꽃을 피우게 하도록 시큰거리며 통증이 있는 무릎과 팔꿈치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눈에 들어도 넣어도 부족한 꽃이 더 중했다. 
올해는 일을 줄이고 꽃을 보면서 즐겨보자고 다짐한다. 그러나 지켜지지 않았다. 어쩌면 지킬 수 없는 다짐, 더 없이 꽃이 잘 자라줬으면 하는 바람에 말할 필요가 없는 다짐이다. 꽃을 키우지 않고 핀 꽃을 즐기는 사람들도 많다. 핀 꽃을 꺾어가기도, 꽃 주변에서 조증에 흥청망청 먹자판을 벌이는 사람들도 많다. 꽃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으니 그가 주인공이다. 꽃은 저절로 피는 것인 줄, 세상에는 일만 하는 사람과 일하면서 즐기는 자와 일하지 않고 이용하고 지배하는 자가 있다. 
이제 종일 쉬지 않고 일하는데 버거운 나이가 되었다. 단련되었다고 생각했는데 역시 한낮의 뙤약볕에 가까운 더위는, 매년 겪는 시련이지만, 더해지고, 극으로 치닫는 이변은 한계를 실감케 한다. 잠시 일탈의 ‘주춤’을 넘어 ‘쉬고 싶다’라는 말을 번복하게 된다. 이제 생각을 넘는다. 만물의 이치를 알아 지혜롭게 일할 나이도 됐건만, 여전히 머리가 나빠 몸이 바쁜이다. 꽃은 손이 가는 만큼 잘 자란다. 작물은 시간을 더해가며 찌는데, 농부는 시간이 더해지며 빠진다. 
해가 있을 때 밖에는 일할 수 없으니, 꽃과 함께였지만, 미처 꽃을 즐기지 못했다. 꽃이 피었음은 알았지만, 밤이 돼서야 꽃이 풍성해졌음을 알았다. 꽃은 같이 한 사람을 알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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