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금쟁이 철학
소금쟁이 철학
  • 김경순 수필가
  • 승인 2022.04.05 1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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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의 문앞에서
김경순 수필가
김경순 수필가

 

겨우내 얼었던 연못이 녹자 제일 먼저 찾아온 녀석은 소금쟁이였다. 그 많던 금붕어와 민물 붕어가 작년에 이유도 모른 채 모두 죽어 나가고 휑하던 연못은 물달팽이와 우렁이가 그나마 허전함을 채워주고 있던 차다. 짐작으로는 연못과 이웃하고 있는 앞집에서 고추 농사를 지면서 일주일이 멀다하고 소독을 해댔으니 그 농약이 아무래도 연못에 영향을 주었다는 생각이 든다. 
가볍기도 하다. 다리는 몸통에 비해 두 배는 길다. 몸도 가늘고 길어 자세히 보아야만 한다. 소금쟁이는 물에 빠진 곤충의 체액을 빨아 먹고 살아가는 육식성 곤충이다. 저렇게 작은 녀석이 육식성이라니 겉모습만 봐서는 모른다는 말이 소금쟁이를 두고 하는 말인 듯하다. 사람의 기척에도 얼마나 예민한지 자세히 보려 몸을 숙이니 벌써 저만큼 달아나 버린다. 예전에는 소금장수들을 일컬어 ‘소금쟁이’로 부르기도 했다고 한다. 소금장수들이 소금을 등에 지고 가는 모습이 소금쟁이와 닮아서일까. 
4월, 벌써 남쪽에는 꽃 소식으로 들썩인다. 아직 코로나로 세상은 뒤숭숭하지만 자연은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이 제 할 일을 하고야 만다. 상춘객의 발길이 이어지든 말든 나무들은 또 꽃들을 활짝 피워냈다. 우리집 화단에도 진달래와 목련이 꽃망울을 터트리기 시작했다. 그런데 목련은 밤사이 서리를 맞았는지 깨끗하지가 않다. 봄볕을 따라 피어나다 밤사이 찬 기운에 꽃잎이 언 모양이다. 작년에도 목련꽃은 제 빛을 발하지 못했다. 급작스레 추워진 날씨에 목련 꽃송이는 하나같이 누렇게 변하고 말았다. 이상한 일이다. 우리집 목련은 추위에 왜 이리도 약한지 모르겠다. 
이상하게도 나는 목련 나무 앞에 서면 마음이 불안하다. 작고 예쁜 꽃망울이 내일 아침이면 누렇게 변하지는 않을까하는 노파심에서다. 어쩌면 이런 마음은 5년 전 봄부터 더 심해졌다는 생각이 든다. 5년 전 4월에도 목련은 어김없이 꽃망울을 터트리고 있었다. 우리 집에는 백목련과 자목련이 있다. 그런데 자목련은 백목련에 비해 피는 시기가 조금 늦다. 세월호 아이들이 바닷속으로 사라진 4월의 봄, 그해 우리집 자목련도 밤사이 추위에 얼어 누렇게 변했던 모습이 잊히질 않는다. 그 맑고 싱그러운 아이들이 한 순간 바닷속으로 사라졌던 그날 목련꽃도 같이 울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내 마음이 이러한데 세월호 아이들의 부모 마음은 어떠할까. 그들에게 4월은 지독하게도 잔인한 달일 터이다. 온통 꽃들로 지천을 물들이는 계절, 누군가의 가슴에는 눈물과 고통으로 피멍이 드는 계절이기도 하다. 
연못에는 너 댓 마리의 소금쟁이가 천천히 물위를 노닐고 있다. 그러고 보니 소금쟁이야 말로 무위자연의 경지에 오른 도인이란 생각이 든다. 바람이 부는 대로 물결이 이는 대로 급하지도 빠르지도 않게 유유자적한다. 소금쟁이의 모습을 물끄러미 보고 있노라니 내가 참으로 어리석기가 그지없다는 생각이 든다. 닥치지도 않은 일을 걱정하고, 지나간 일에서도 헤어 나오지 못하며 애면글면하고 있으니 말이다. 그러니 언제나 몸과 마음이 무거울 수밖에 없지 않은가. 순간 소금쟁이의 모습이 번뇌로 가득한 나에게 죽비 소리로 다가와 일침을 놓는다. 가벼움은 무거움의 반대말이 아니라 깊고 넓으며, 비움의 다른 말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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