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동, 무릎 낮춘 정원사와 국가정원
문화동, 무릎 낮춘 정원사와 국가정원
  • 이창규 충북도 산림녹지 과장
  • 승인 2022.03.31 17: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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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광장
이창규 충북도 산림녹지 과장
이창규 충북도 산림녹지 과장

 

바야흐로 봄이다. 도청이 자리 잡고 있는 문화동 역시 봄맞이가 한창이다. 정원에는 산수유나무 노란 꽃이 활짝 피었다. 목련과 벚나무가 꽃망울을 탱탱하게 부풀리고 있다. 연못의 가장자리에는 초록 물빛이 스며들고 있다. 약속된 시계열에 맞춘 채색의 계절이 도래하고 있다. 봄이 오는 길목을 바라보다가 문득 저 홀로 오는 것이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며칠째 청사 앞 정원을 손질하고 있는 분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하루 일과를 정원 관리에 몰입하는 그 분은 항상 바닥에 닿을 듯 낮은 자세를 유지한다. 겸손함을 넘어선 경건함을 읽을 수 있어 각별함을 느낀다.

간간히 부는 봄바람을 핑계로 눈가를 적시게 한다. 산책로의 작은 돌을 치우고 보도블럭 틈에서 자라는 잡초를 정리하며 화단의 키 작은 나무를 북돋아준다.

그 분의 손에는 호미 한 자루와 방을 쓰는 빗자루가 들려 있다. 하나같이 허리를 펴고는 다룰 수 없는 작업도구이다. 무릎을 굽히지 않으면 결코 도달할 수 없는 거리에서 문화동의 봄을 당기고 있다. 직접 체득해야 하는 삶의 방식을 통해 깨달음을 주는 작은 성자(聖者)임이 분명하다.

산천에 꽃소식이 화사하게 전해진다. 남녘의 매화나무가 사회관계망서비스(SNS) 프로필을 넘치도록 장식하고 있다.

우리 지역에도 향기로는 으뜸으로 알려진 미선나무 전시회 소식이 들린다.

봄은 희망이다. 아니 희망이어야 한다. 감염병 확산으로 지친 사람들에게 가장 적합한 희망의 메시지는 봄을 여는 햇볕이며, 그 햇볕을 응축한 꽃이며, 꽃이 만발하도록 잘 손질된 정원에서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정원을 가꾸는 것은 하나의 나라를 다스리는 것”과 같다는 말은 이사를 할 때마다 정원을 만들고 꽃과 나무를 가꾸면서 문학적 상상력을 키웠다는 헤르만 헷세가 저서 `정원 일의 즐거움'에 남겼다.

“진정한 인생은 정원 일을 시작하는 날 비로소 시작된다”라는 중국속담이 있다.

고대 이집트 시대에도 있었다는 원예치료 효과는 오늘날에도 유효하다. 심리적인 안정은 물론 일정량의 노동으로 얻어지는 치유기능이 현대인에게 오히려 적합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우리 지역에 국가정원을 유치하자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지방정원을 요청하는 시군도 늘고 있다. 아직 초기단계인 민간정원 영역을 자리매김하려는 시책이 마련되고 있다. 실내외 정원의 중요성은 산림청의 적극적인 의지와 지원으로 매년 증가하는 예산규모에서 확인이 가능하다. 청주국제공항 1층 로비에 설치된 실내정원은 기능성 못지않게 포토존으로 인기를 모으고 있다. 도서관, 공공청사를 중심으로 실내외 정원 수요는 급증할 것이다. 생활권 중심으로 푸른 성장점이 빼곡히 들어서는 기폭제가 될 것이다.

이러한 푸른 성장점이 확실한 면모를 갖추기 위해서 국가정원 유치가 중요하다. 실핏줄처럼 뻗어나가는 정원문화의 구심점을 찾아야 한다. 남녘에 편중된 국가시설의 균형적 배려가 필요하다. 단순한 수치의 개념이 아니라 생태공간의 네트워크를 완성하자는 주문인 것이다. 중부권의 특산 식물도 국가자산의 지위로 존중받아야 한다는 당위성에 근거한 열망인 것이다. 그러한 열망과 함께 무릎 낮춘 정원사가 준비하는 문화동의 봄이 맑고 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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