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블 32년 역사에 바치는 팬 한 자루
허블 32년 역사에 바치는 팬 한 자루
  • 한강식 속리산중학교 교사
  • 승인 2022.03.30 16: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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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이 들려주는 과학이야기
한강식 속리산중학교 교사
한강식 속리산중학교 교사

 

2002년에 개봉했던 `뷰티풀마인드'라는 영화가 있다.

실존 인물인 미국의 수학자 존 내쉬의 생을 다룬 영화다.

뛰어난 업적에도 불구하고 환각과 망상에 시달리며 조현병을 앓아온 그가, 뒤늦게 자신의 병을 인정하고 극복해가는 과정을 담고 있다.

영화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건 역시 `팬 세리머니'로 알려진 마지막 장면이다.

노벨상위원회는 그에게 노벨상 수여를 결정하지만, 조현병을 가진 그가 상의 권위를 떨어뜨리지는 않을지 걱정한다.

그래서 그를 인터뷰 하기 위해 관계자가 대학으로 찾아온다. 이 자리에서 주변의 동료 교수들이 존 내쉬에게 차례로 자신들의 필기구를 헌정한다.

학문을 위한 가장 기본적인 도구를 통해 존경의 마음을 전함으로써 그의 자격을 간접적으로 증명한 것이다.

사실 감동을 위한 영화의 연출 장면이긴 하지만 학자로서 이보다 더 적절한 존경의 마음 표시가 있을까 싶다.

그리고 지난 16일. 전 세계 많은 천문학자의 마음을 매료시킨 사진 몇 장이 공개됐다. 지난 크리스마스 때 발사한 차세대 우주 망원경인 `제임스 웹'이 촬영한 테스트 사진들이다.

성능 확인용 사진일 뿐이지만 중심에서 영롱하게 빛나는 별 사진은 많은 사람의 눈을 즐겁게 하기에 충분했다.

하지만 과학자들이 이 사진에서 진짜 매력을 느끼는 부분은 따로 있었다. 별 주변에 보이는 배경 은하들 때문이다.

허블 우주 망원경을 유명하게 만든 사진들은 수없이 많다. 하지만`허블 울트라 딥필드'라고 불리는 사진만큼 허블의 가치를 증명한 사진은 없을 것 같다.

이 사진은 아무것도 없을 것 같은 우주의 빈 영역을 2002년부터 10년에 걸쳐 촬영한 영상이다.

실제 촬영 누적 시간만 200만 초에 달하는데, 이 좁은 영역에서 무려 10,000개에 달하는 은하들을 발견했다.

제임스 웹이 전해온 별 사진에도 이러한 배경 은하들이 다수 포함되어 있었다. 제임스 웹의 광학 성능은 허블의 약 10배 정도라고 한다. 단순히 계산하면, 허블이 10년에 걸쳐 얻은 사진을 제임스 웹은 1년 만에 얻을 수 있다는 뜻이다. 제임스 웹을 이용해 허블처럼 10년에 걸친 사진을 얻는다면, 우리는 그동안 보지 못한 새로운 우주를 맞이하게 될 것이다.

이제 학생들은 제임스 웹의 시대에서 학창시절을 보낼 것이다. 허블 망원경이 아직 퇴역한 것은 아니지만 이제 그 이름을 접할 기회가 점점 줄어들 것 같아 섭섭한 마음도 든다.

지난 32년간 우주에 대한 즐거운 상상을 가능하게 해 준 허블 망원경에게. 영화에서 존 내쉬 교수가 받았던 한 자루의 팬처럼 감사와 존경의 마음을 담아 이 글을 전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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