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밖 세상읽기
창밖 세상읽기
  • 김순남 수필가
  • 승인 2022.03.28 1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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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김순남 수필가
김순남 수필가

 

오랜만에 기차를 타게 되었다. 멀리 부전역을 출발해 청량리를 향해 운행되는 중앙선 열차이다. 예전엔 보통 열 량 정도 이어져 앞쪽에 탑승하면 창밖으로 동물의 긴 꼬리처럼 이어진 차량 숫자를 세며 신기해했던 추억이 있다. 지금은 코로나19 상황이기도 하고 다른 교통편이 발달되어 그런지 차량이 다섯 량 밖에 안 된다.

긴 터널을 지나자 원주역에 정차했다. 드문드문 비어있던 자리마저 모두 채워졌다. 거듭되는 안내방송에 마음은 더욱 긴장된다. 객실 내에서 방역을 위한 주의사항들을 지켜달라는 내용이다. 마스크 속에 가려진 표정들을 눈빛만으로 읽을 수는 없지만 모두가 편하게 보이지 않는다.

객실 내 모습도 예전 풍경과는 거리가 멀다. `코로나19상황' 이전만 하더라도 기차에는 음료와 계란, 과자, 커피 등을 파는 이동 매점이 수시로 지나다녔다. 간단한 음식과 차를 마실 수 있는 카페 전용 칸도 있었다. 지금은 모두 볼 수가 없다. 승객들은 눈을 감고 휴식중이거나 대부분 스마트폰에 눈길을 주고 누군가와 소통을 하고 있는 모습이다. 침묵 속에 기차는 쉼 없이 달리다 정해진 역에 도착해 사람들을 내려놓고 또 다른 사람들을 태우고 서울을 향해 가고 있다.

기차를 타면 차창 밖을 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번화한 도시를 벗어나 들과 산이 이어진다. 비슷비슷 하기도 하고 지역에 따라 다르기도 한 산천, 마을이나 도시가 천천히 펼쳐졌다가 뒷걸음치며 물러난다. 산과들을 통과하고 흐르는 강을 가로질러 달리는 차에 앉아 바깥세상을 즐기다보니 풍경을 감상하는데 이만한 자리가 또 있으랴싶다. 창밖에는 봄비가 내리고 있다. 아직 푸른 새싹들이 이곳에서는 보이지 않지만 아마도 가까이 가보면 밭둑이나 논두렁, 또는 척박한 냇둑에서도 씨앗이 떨어진 곳이면 어디든 새싹들이 파릇파릇 올라오고 있을 터이다. 멀리 보이는 산에 앙상한 나무들도 겨우내 서로 보듬어주며 지탱해왔으리라. 굳건히 겨울을 이겨내고 지금쯤은 물관을 통해 물을 길어 올리느라 분주할 것 같다. 머지않아 나뭇잎들이 피어나리라.

전원주택이 많이 들어섰다. 마을에서 벗어난 밭가나 개울가는 물론, 완만한 산자락에도 주택과 펜션, 농막이 자리를 잡았다. 예전 같으면 집하나 없었을 산중턱에도 마을이 생겼다. 아파트가 밀집된 도시에 직장이 있고 주거지가 그곳이지만 주말이면 한적한 곳을 찾아 나서는 이들이 많아졌다. 주위에도 은퇴 후, 아니면 일찌감치 전원생활을 즐기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멀리 보이는 시선에서 또 다른 풍경이 떠오른다. 몇 해 전 동유럽 여행 중에 슬로베니아에 블레드 성과 호수를 관광하고 다음 목적지로 이동 중이었다. 버스는 그야말로 한적한 시골길을 천천히 가고 있는데 넓은 전원과 어울려 띄엄띄엄 한 집, 두 집 농가가 고즈넉이 자리하고 있었다. 오래전 달력 그림으로 보아왔던 풍경과 비슷해서인지 낯설지 않게 다가왔다. 굴뚝에 연기가 모락모락 피어나 예전의 우리 시골마을을 보고 있는 것 같았다. 그때, 마음이 참으로 안온함을 느꼈었다. 그 여행길에서 동유럽 여러 나라 명소들을 돌아보며 감탄도 많이 하곤 했지만 지금껏 마음에 선명하고 평온하게 남아있는 그 시간이다.

오랜 가뭄을 해갈해줄 봄비가 조용히 내린다, 전염병이 창궐하는 이 환난 중에 기차에서 바라보는 차창 밖 풍경들을 보며 메말랐던 마음에도 촉촉한 비와함께 그림하나 새겨지는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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