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서 행하라
가서 행하라
  • 구숙진 KPCA 그림책 지도사
  • 승인 2022.03.24 1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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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책 그릇에 담긴 우리 이야기
구숙진 KPCA 그림책 지도사
구숙진 KPCA 그림책 지도사

 

우리는 종종 `아직 세상은 살만하지!'란 말을 하거나 타인에게서 듣는다. 이익을 바라지 않고 자신보다 타인을 먼저 생각하는 사람의 행동을 봤을 때 그런 말을 한다. 물론 성인聖人뿐아니라 속세의 범인凡人에게서도 우리는 본다. 물리적인 돈으로 주든 시간을 내어주는 친절이든 마음을 보태어 주는 힘이든 그들의 가치 소비는 감동을 낳는다.

몇 해 전, 작은 시누이랑 시어머님을 모시고 식당에서 점심을 먹은 적이 있다. 평일 좀 늦은 점심이라 그런지 혼자 먹는 남자 손님만이 있었다. 식사를 마친 후 계산을 하려는데 앞선 손님이 우리 몫까지 값을 치렀다는 것이다. 아는 사이인 줄 알았단다. 우린 누구인지도 연유도 모른 채 밥을 얻어 먹은 격이다. 감사 인사도 못 하고. `돌아가신 어머니 생각에…'라고 혼잣말처럼 하고 간 그분의 어머니에 대한 애틋한 마음이 우리에게 감동의 파장을 일으켰다. 우린 `요즘에도 저런 분이 있네!'라는 말을 하며 집으로 향했다.

소소하게는 이렇게, 범 국민적으로는 2007년 있었던 서해 기름 유출 사고, 최근에는 강원도 산불과 같은 사고 발생 시 물적, 인적, 심리적으로 보태어 주는 이들에게 우리는 말한다. `아직 세상은 살만하지!'라고.

그리고 펜으로 위로를 해 주고 안정을 찾게 해 주는 이들이 있다. 수없이 많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수없이 많다. 미처 알려지지 않은 아니, 알지 못하고 있는 이들이 더 많을 것이다. <비에도 지지 않고/미야자와 겐지/언제나북스>라는 그림책이 나에게는 그런 책이다. 이제야 알게 된 책이다.

`욕심은 없이 결코 화 내지 않으며 … 세상 모든 일에 내 잇속을 따지지 않고 잘 보고 들어 알고 그래서 잊지 않고'라는 문구가 있다. 지극히 이상적인 말이다. 흡사 우리나라의 권정생 선생님을 생각하게 하는 글이기도 하다. 이상적이라는 것이 뭔가? 가장 완전하다고 여겨지는 것 아닌가! 그러기에 세대를 아우르고 시대를 초월해서 추구하려는 것이 있으면 우린 `이상적'이란 수식어를 붙인다.

이렇게 보편적이고 이상적인 사상으로 마음을 다잡았으면 시인은 `행'하길 권한다. `… 동쪽에 병든 아이 있으면 가서 돌보아 주고 … 가서 그 볏단을 짊어지고 … 가서 두려워하지 말라 말하고…'에서 보듯 작가는 `가서'에 방점을 찍어 실천의 중요성을 되뇌인다. 유작인 육필원고에는 붉은 펜으로 써 실천하는 삶이 지향점임이자 작가의 문학세계의 기반인 것을 암시한다.

`가서'는 이 시의 마지막 행인 `그런 사람이 나는 되고 싶다'와 호응한다. 이를 기반으로 작가의 동생은 이 글이 시가 아닌 `기도문'이라 추정한다. 사람으로서 가져야 할 이상향을 기도하듯 읊조렸을 시인을 머릿속에 그려본다. 병약함 속에 품고 있던 강인한 의지를 읽어 본다.

시인의 의지를 받아, 행하는 것에 굼뜨고 생각하는 것으로 끝내려 하는 나를 되돌아본다. 그리고 작년 다이어리의 첫 장에 썼던 문구 `행하라!'를 올 해의 다이어리에 다시 쓴다. 한 단어를 덧붙여 쓴다. `가서 행하라!'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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