겸허한 감사로 맞이하는 봄
겸허한 감사로 맞이하는 봄
  • 추주연 충북단재교육연수원 교육연구사
  • 승인 2022.03.23 17:4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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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임즈 포럼
추주연 충북단재교육연수원 교육연구사
추주연 충북단재교육연수원 교육연구사

 

작은 사각형 안으로 물이 옅게 퍼지고 이내 붉은색 선이 드러난다. 붉은 실선은 분명 두 줄이다. 잠이 덜 깬 걸까? 눈을 비비고 검사 키트를 코앞까지 들어 올려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여러 번 했던 코로나 신속항원검사인데 결국 두 줄의 선을 목도하게 된 것이다.

휴일에 오랜 길벗 선생님들과 만나 책 출판에 관한 논의를 했다. 매번 화상회의 화면으로 보다가 오랜만에 실물을 영접한 우리는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묵혀둔 이야기꽃을 피웠다. 목이 이따금 아프기도 했지만 오랜만에 신나게 떠든 탓이겠거니 했다.

출근을 앞둔 아침, 혹시나 하는 마음에 해본 검사인데 너무나 선명한 붉은 두 줄을 보는 순간 숨이 멎는 듯했다. 어깨가 털썩 내려가고 잠시 멍하니 앉아있었다. 그러나 넋 놓고 앉아있을 시간이 없다. 지난 며칠 간 동선을 파노라마처럼 떠올리며 전화를 걸기 시작했다. 마음은 분주한데 휴대폰을 든 손이 바르르 떨린다.

가족들, 직장 동료들, 어제 만난 선생님들에게 전화를 걸어야 했다. 암담함이 휘몰아친다. 불안과 걱정, 자책과 미안함, 알 수 없는 누군가를 향한 원망도 있다. 여태껏 확진 판정을 받은 지인들에게 `네 탓이 아니다. 회복에 전념해라.' 가볍게 말해왔지만 이제 정말이지 남의 일이 아닌 것이다.

유전자증폭검사를 위해 집 근처 보건소 공터 가득한 줄 끝에 섰다. 초조하고 지루한 기다림에 지쳐갈 때쯤 난데없이 옆줄에서 큰 소리가 들린다. 길어진 대기 시간에 짜증을 넘어 화가 난 모양이다. 줄마다 대기 시간이 다른 것에 대한 항의다. 방호복을 입은 자원봉사자는 그럴 수밖에 없는 상황을 이야기하다 체념한 듯 죄송하단 말만 되풀이한다. 목소리 높여 대기 시스템을 탓하던 목소리도 제풀에 꺾였는지 잠잠해진다.

긴 행렬 사이로 얼핏 보기에도 증세가 심해 보이는 아주머니 한 분이 부축을 받으며 들어선다. 머리가 희끗한 남편은 몸을 가누지 못하는 아내가 검사를 먼저 받도록 도움을 청한다. 이른 아침 1시간을 넘게 기다린 사람들이지만 흔쾌히 순서를 양보한다.

개미 박사라 불리는 최재천 교수의 저서 「생명이 있는 것은 다 아름답다」에서 고래들은 거동이 불편한 동료를 결코 나 몰라라 하지 않는다는 이야기를 읽은 기억이 있다. 다친 동료를 여러 고래들이 둘러싸고 들어나르듯 돌본다는 것이다. 몸이 아픈 것보다 더 아픈 것이 시선이라고 했던가? 나보다 약한 존재를 돕는 것이 나를 보살피는 길이라는 것을 고래는 알고 있었던 모양이다.

민관합동 코로나19 일상회복지원위원회 공동위원장을 맡고 있는 최재천 교수는 얼마 전 코로나19라고 하는 큰 산의 정상에 거의 다 왔노라고 표현했다. 팬데믹 속에서 단 한 사람이라도 살리려고 끝까지 노력하는 한국을 위대한 나라라고 평가하기도 했다.

어수선한 행렬 속 청각장애인 부부와 두 아이들이 사랑스럽다. 부부는 수화로 아이들에게 말을 건네고 아이들은 쉴 새 없이 노래를 부르며 재잘재잘 수다를 떤다. 소통의 방식은 달라도 표정만으로 서로 얼마나 아끼고 사랑하는지 알 것 같다. 놀이공원 입장을 기다리는 듯 해맑은 아이들 모습에 덩달아 마음이 푸근해진다.

정오가 가까워지자 뺨을 스치는 바람이 한결 따스한 걸 보면 봄은 변함없이 우리 곁에 오려나 보다. 겸허한 감사로 맞이하는 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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