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아교육을 의무교육으로 바꾸면
유아교육을 의무교육으로 바꾸면
  • 이창수 시인
  • 승인 2022.03.23 17: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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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이창수 시인
이창수 시인

 

유아교육을 의무교육으로 바꾸면 맨 먼저 혼인율이 증가할 것이고, 핵 가정이 안정되며 출산율이 높아지고 앞으로 닥쳐올 초 고령사회기간을 줄여 줄 수 있다. 하지만, 출산율이 계속 1%를 벗어나지 못한다면 100년 이내에 우리는 국가의 문을 닫아야 할 위기에 당면하게 될 것이고 이스라엘 역사의 전철을 우리가 밟게 되지 않는다고 장담할 수 없을 것이다.

초등 교육부터 서로 밟고 올라서야 하는 경쟁을 기본으로 하는 교육 환경에서는 상호 신뢰를 바탕으로 서로 격려하고 부추기며 예의를 갖추는 신용사회로 가긴 사실상 불가능하다.

진실은 감추고 태연하게 거짓을 말하고 거짓이 드러나면 더 큰 거짓으로 덮는 불신사회에서는 출산율이 늘어나고 경제가 발전해도 언제 누구에게 어떻게 당할지 몰라 전전긍긍하며 살아야 하니 이것이 지옥이다.

유아교육을 의무교육으로 한다면 불신사회구조를 신용사회구조로 바꿀 수 있을 것이다.

지금처럼 유아를 각 가정에서 교육하면 불가능하다. 그러나 3세부터 7세까지 의무교육으로 놀이방과 유치원에서 초기인생관과 가치개념을 인성人性차원에서 교육한다면 가능하다.

사람은 사람 속에서 사람에 의지해서 사람과 더불어 사는 것이다. 그러므로 참되고 거짓이 없어야 믿을 수 있고 믿음이 보통의 상식으로 승화돼야 서로 처지를 이해하고 아픔을 다독여 줄 수 있는 여지餘地가 생긴다.

서로 믿고 존중함으로써 신뢰가 쌓이고 신뢰를 먹으며 사랑이 자란다. 신용 사회에서는 먼저 상대의 쳐지나 아픔을 살피게 되고 서로 존경하며 아끼게 되니 상생相生의 지혜가 이뤄질 수 있다.

옛날 커발한 환웅(bc 3, 898년)때 교육은 태교부터 하라고 했다. 태교는 어미의 생각과 행동을 뱃속의 아기가 감지하고 있으므로 어미가 스스로 인성을 닦아 고매高邁한 품위를 유지하여 뱃속의 아기에게 본을 보이는 것으로 뱃속에서부터 교육을 시작하는 것이다.

우리 한국인은 그 뿌리를 구한에 두고 있어 천신의 자손이다.

7세만 전하여 역년이 3301년 혹은 6만3182년 이라하는 파내류산 밑 천해 동쪽 한님후예의 문명과, 훗날 타민족들이 감히 흉내 내지 못하고 부러워하던 동방예의지국을 이룰 수 있었던 원동력도 초기 인성교육을 이룰 수 있었기에 가능했을 것이다.

새 술은 새 단지에 담아야 한다. 유아교육 교사는 정신적인 가치관과 인생관을 공부한 일정한 자격보유자를 정규 공무원으로 선발하여 임명하고, 3살부터 7살까지의 유아에게 책임을 전제로 권리를 주장하는 진짜 민주주의 기본과, 놀이의 선택을 투표로 결정하고, 다수결정에 따르는 승복을 애초에 인식시켜 상식화해야 한다 이 일은 국가 천년지계다.

예로부터 선생님은 사부師父라하여 어버이와 같이 공경하고 스승은 학생을 제자(弟子)라하여 아들이나 동생같이 사랑하며 자신이 아는 모든 것을 최선을 다해서 제자에게 가르쳐주는 직종이라 성직이라 했다.

그래서 교직자는 노동자가 될 수 없다. 노동자는 노동을 재공하고 그 대가를 받아 생활하는 사람을 이르는 말인데 어찌 책임 있는 교사가 노동자 일 수 있겠는가.

언론 또한 교직과 같은 맥락에서 노동자가 될 수 없다. 김부식은 삼국사기 신라 진흥왕조에서 이사부의 입을 통해 이렇게 말한다.

“역사라는 것은 임금과 신하들의 선악을 기록하여 그 평을 만대에 보이는것(國史者,記君臣之善惡,示褒貶於萬代)이다” 지금의 언론인이 옛날의 언관의 역할을 맡아 언로言路를 지키고 역사와 사람을 저울질하여 그 선악을 평하니 언론인이 노동자이면 이 세상의 보편적 기준은 누가 세울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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