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와 현실, 현실과 드라마
드라마와 현실, 현실과 드라마
  • 정규호 문화기획자·칼럼니스트
  • 승인 2022.03.22 19: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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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단상
정규호 문화기획자·칼럼니스트
정규호 문화기획자·칼럼니스트

 

쉬는 시간인 어느 남녀공학 고등학교 교실 밖 복도. 남녀학생들 여럿이 나와 있다. 이들은 수능을 몇 달 남겨두지 않은 고3인데 그중 한 남학생이 교복 안에 입은 핵인싸 티셔츠를 자랑하다가 마침 그곳을 지나던 학생주임 교사에게 걸린다. 교사는 지적과 동시에 학생의 뺨을 사정없이 한 대 때리더니 흥분을 자제하지 못하고 피가 나도록 연타를 가한다. 근처에서 이 장면을 목격한 한 여학생이 `폭력'으로 규정하면서 서슬 시퍼런 `학주'에게 당차게 항의한다. 뺨을 맞은 남학생은 교내 밴드에서 노래를 부르며 인기를 끌고 있는, 교사들의 입장에서는 소위 `품행이 방정'하지 못한 인물. 이 `폭력'에 당차게 항의하는 여학생은 전교1등을 놓치지 않는 엘리트 모범생이다. 당연하다는 듯 `학주'인 교사는 폭력을 `학생지도'라는 선의로 포장하였고, 여학생의 사과 요구를 묵살한다. 결국 여학생의 신고에 따라 경찰이 학교에 출동하였으나 결론은?

이 이야기는 tvN 드라마 <스물다섯 스물하나>에 나오는 한 장면이다. <스물다섯 스물하나>는 `1998년을 배경으로 혼란스러운 사회 환경 속에서 만난 두 남녀의 사랑과 청춘 이야기를 그린 드라마'로 홈페이지에 소개되어 있다. 주인공은 펜싱선수 나희도 역할을 하는 김태리와 고졸 방송국 기자 백이진 역의 남주혁. 풋풋한 호감을 얻고 있는 두 남녀배우의 케미와 더불어 잔잔하지만 그렇다고 가볍지 않는 당시의 사회상을 그리면서 꽤 높은 시청률을 기록하고 있다.

1990년대에 펜싱에서 여자 금메달리스트가 나오고, 심지어 고졸인데도 공채를 거쳐 방송국 기자로 활약하는 설정은 현실에서도 그랬으면 하는 희망의 소구에 해당한다.

궁금한 드라마 속 `폭력'과 현실은 어떤가. 드라마 속 `폭력'은 `교권'과 `학생지도'를 빌미로 기득권 집단에 과도한 정당성을 부여하는 쪽으로 흐른다.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은 `폭력'교사의 편을 들며, 신고한 여학생의 신분을 언론에 흘리고, 고졸출신이 아닌 기자는 `학생지도'를 `신고'로 위축시키는 어린 학생들의 작태(?)를 폭로하려는 왜곡에 전혀 주저함이 없다.

드라마 속 `폭력'의 결론은 어떻게 됐을까.

능력주의의 맨 앞에 있는 전교1등은 `폭력'을 지극히 개인적인 방식으로 폭로하고 고발하지만 가해자와 그가 속한 기득권은 이를 계기로 반성과 사과를 강요하는 작반하장의 태도를 굽히지 않고, 아직 성숙되지 못한 전교1등 엘리트가 자퇴하는 것으로 사건의 에피소드는 마무리된다. 그 해 수능을 보지 못하는 중대한 위기는 아랑곳없다.

그렇다면 `사실'이 아니라 `사실적'으로 묘사한 드라마 속 세상은 현실과 다른가. 나는 결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하는 쪽이다. 학교는 물론 가정에서조차 `폭력'은 훈육의 방법이 될 수 없다는 사회적 메시지는 90년대와 달리 보편적으로 확장된 것은 맞다. 그러나 전교1등 엘리트가 혼자서 항의하고, 혼자서 책임지는. 그리하여 피해 당사자는 주저하고 나머지는 집단화로 저항하지 못하는 드라마 속 이야기는 20여년이 흐른 `지금/여기'에서 더 혹독하다. 현실에서는 `폭력'에 대해 힘차게 항의하는 엘리트의 연대는 희박하고, 대중은 집단지성을 외면한 채 `나 아니면 그만'이라는 식의 삶을 구차하게 이어가고 있다. 아! 변치 않는 것은 있다. 전교1등 정도로 공부를 잘하면 무조건 과잉보호되고, 엘리트에 속하지 못한 보통의 사람들은 `능력주의'에 굴종하고 마는 서열과 불평등의 세상은 갈수록 깊어지고, 또 넓어지고 있다.

드라마 속 하나의 에피소드를 갖고 의미를 지나치게 확대하는 것 아니냐는 물음을 스스로에게 하지 않는 건 아니다. 그러나 대선을 앞두고 횡행했던 `국민주권'과 `갑'의 세상에서 한참 멀어진 `을'의 위치로 전락한 지금, 아주 작은 모순조차도 허투루 넘기지 않는 냉철한 자각은 항상 깨어있어야 한다는 걸 <스물다섯 스물하나>를 통해 새삼스럽게 되살리고 싶을 뿐이다.

다시 `갑'의 세상으로 향하는 카운트다운이 시작되었다. 국민보다 훨씬 절실한 시민의 주권. 민주주의의 적은 아주 가까이 있고, `악마는 언제나 디테일에 있다'. 세심한 성찰과 연대의 힘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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