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미와 가시
장미와 가시
  • 김기자 수필가
  • 승인 2022.03.21 1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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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김기자 수필가
김기자 수필가

 

우리 내외는 아들을 얘기할 때 대변인이라 한다.

며느리가 할 이야기도 어쩐 연유인지 거의 제가 알려오는 입장이어서 그렇다.

결혼초야 며느리 입장에서 시부모가 어려워서 그렇다지만 아이를 둘 낳고서도 여전하다. 사실 이야기가 크건 작건 며느리에게 직접 듣고 심정이 왜 아니겠는가.

벼르던 차 어느 날 조심스레 대화를 던져보았다.

웬 걸 예상치 못한 일이 벌어지고 말았다.

저는 원래 성격이 그렇고 서로가 살아온 환경부터 다르기에 어쩔 수 없다며 불편한 표정을 지어 보인다. 처음으로 고부간의 의견 차이에 부딪힌 묘한 기운을 맛보아야 했다.

당황스런 마음을 다독이며 앞으로는 무조건 한마디 말도 조심해야겠다는 생각만 자리를 잡게 되었다.

내 속이 좁은 탓인지는 몰라도 그동안 며느리를 딸만큼 여기겠노라 다짐했던 기대는 조금씩 흔들릴 수밖에 없었다.

어쩌랴. 내 딸도 시집에서 역시 대접받으며 살기를 원하던 차가 아니던가. 잠시 마음을 추스르며 그래도 며느리를 이해해야겠다고 연신 다짐한다.

달랐던 의견을 꺼내어 보이고서 상처 받았을까봐 후회는 여전할 뿐이다. 그리고 끝내 이어가는 아들의 대변인 노릇에도 아무렇지 않게 시간을 보내고 있다.

손주들을 잠간 봐 달라거나 병원에 데려가 가주라는 부탁이 오면 열일 제쳐두고서 달려가고 있으니 나도 어쩔 수 없는 내리사랑의 주역을 감당해가고 있었다.

내 딸에게는 사소한 일에도 큰소리로 야단을 치기 다반사이다. 그래도 곧 풀어져서 벽이 없으니 얼마나 편한지 모른다.

딸이 있으니 고맙고 감사하다는 생각까지 드는 거였다. 덧붙여 딸과 며느리의 경계에 대해서도 지혜를 잃지 않으려 노력한다. 그만큼 어른의 자리도 많은 것을 필요로 하고 있었다.

며느리를 들이기 전에는 늘 머릿속은 친하게 지내보고 싶은 생각들로 가득 했었지만 지금은 가깝고도 먼 사이라는 것을 실감하는 중이다.

부디 아들과 행복한 가정을 꾸리며 살아간다면 그 또한 효도라고 여기니 차라리 편해졌다.

갑자기 며느리가 장미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꽃을 지탱하는 줄기에 매달린 가시로 함께 다가왔다.

꽃을 지켜내는 가시, 그것은 자기방어이며 삶을 지탱하는 의지로 보였다. 세상에서 예쁘기로 치면 가장 우월한 꽃일진대 누구나 함부로 꺾을 수 없는 독특한 자태, 나는 그것을 소중한 인격으로 여기기로 했다.

꺾기 보다는 적당한 거리에서 바라볼 때 더 아름답고 향기를 부르는 관계의 소중함이라고나 할까.

꽃과 가시를 지닌 필연의 생명체, 어여쁨에 취해 손이라도 내밀면 자칫 가시에 다칠지도 모르는 처지, 깨달은 것이 있다면 며느리는 차원 높은 장미였다.

시간이 지나면서 이젠 그다지 불편한 것들이 없다.

맘의 모서리조차 둥글어져가고 있을 뿐이다.

내가 늙어가는 동안 아들이 내내 대변인으로 산다 해도 괜찮다. 장미와 가시가 공존하면서 빚어내는 꽃의 진가를 들여다보며 새삼 빠져들고 있으니 스스로 터득한 만족함이다.

한편 세상에서 가시달린 장미꽃이 어디 며느리뿐이겠는가. 우리의 삶 주변에서 의도치 않게 만나며 살아가는 사람들 중에도 허다함을 떠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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