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전연명의료의향서
사전연명의료의향서
  • 김일복 시인
  • 승인 2022.03.20 1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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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가는대로 붓 가는대로
김일복 시인
김일복 시인

 

사는 것이 어디 내 마음같이 된단 말인가? 죽는 것이 어디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일인가? 우리 인생을 마음먹은 대로 자유롭게 살아온 사람이 몇 명이나 될까? 얼마 전 후배와 등산길을 걸으며 오간 말이다. 임도를 걷다 보니 양지바른 곳에 연한 군청색으로, 흰색으로 도는 노란 봄 까치꽃이 마중을 나왔다. 겨울을 막 벗어난 도명산은 기암으로 이루어진 산봉우리 마다 장관을 이룬다. 참으로 아름다운 삶이 아니던가!

요즘 동네마다 슈퍼마켓을 연상시키듯 요양원이 들어서고 있다. 인원 부족으로 관리감독은 부실하고 노인 상대로 돈벌이 수단으로만 전락하여 생명에 대한 윤리문제가 대두되고 있다. 요양시설에 계시는 어르신들의 죽음은 어떠한가? 자식들이 임종을 지켜보지 못하고 요양원 침대에 누워 천장만 바라본 채 외롭게 죽어가는 게 현실이다.

그로부터 얼마 후 사전의료연명의향서를 작성하러 건강보험공단을 찾아갔다. 사전의료연명 제도는 선택이 아니라 필수라고 생각했다. 사전의료연명의향서란? 19세 이상인 사람이 회복 불가능한 상태가 되었을 때 연명치료를 하지 않겠다는 의사를 서류로 미리 작성해 두는 제도이다.

혼수(코마)상태의 환자가 나머지 삶에 대한 정지 또는 연명에 대한 판단을 못하기 때문에 2018년 2월에 연명의료 결정법이 시행되어 오고 있다. 의도적이든 아니든 가능성이 없는 환자의 고통을 덜어주고 사회적 비용을 줄이는 데도 의의가 있다고 한다.

따라서 자기 결정권을 최대한 존중하는 의미가 있다. 돌아오는 길에 나 스스로에게 `잘했어'라고 칭찬해 주었다.

미래를 예측하거나 판단할 수 없으니, 죽음을 어떻게 받아들일까? 라는 생각을 하면 무언가가 나를 지배하는 듯 억누르는 같은 불안이 생긴다. 누구나 나이가 들면 의지력이나 열정도 줄어들게 마련이다. 그래서 어떤 이는 저항할 생각조차 못하고 죽음을 맞이하는 경우가 있다.

톨스토이는 `세상에 죽음만큼 확실한 것은 없다. 그런데 사람들은 겨우살이를 준비하면서도 죽음은 준비하지 않는다.'라고 말한다. 의식을 제어하지 못하는 상황에 대비해서 내 삶을 진심으로 응원하고 굳건한 의지로 살필 필요가 있어야겠다. 죽음은 어느 정점을 향해 달려가는?유한의 시작이다. 어떤 일을 하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니라, 주어지면 어떤 일이든 해야 할 시기이다. 지금부터 준비해야 한다. 삶을 정리할 시간을 잃어버리거나 사는데 바빠서 모르고 지나간다면 얼마나 쓸쓸하고 아픈 일인가? 후회하거나 후회하지 않는 것은 개인의 판단이다. 사람 관계에 있어 사랑하는 사람과 이별여행을 떠난다든지, 미워하는 사람과 화해와 용서로 갈등을 없애고 욕망으로부터 벗어나 자비를 베푸는 시간을 보내며, 잔잔한 물결처럼 삶을 정리해 가면 남은 삶의 의미를 더하는 일이라고 본다.

사전연명의향등록증에 `인생의 마지막 순간, 당신의 선택을 존중합니다.'라고 쓰여 있다. 사전연명제도에 대한 존엄과 자기결정권이 존중받는 문화가 정착되어가고 있다. 죽음을 응시하고 현실을 수용하는 사람이 늘어나고 있다. 생명에 대한 인식이나 사고가 변화되고 있다는 것이다.

매일 눈을 뜨는 아침은, 또 다른 하루를 살아갈 수 있는 선물이라고 한다. 오늘 내가 살 것인지 말 것인지, 오늘이 아무리 힘들어도 살아 있다면 그것은 희망이며 행복이다. 밤이 지나면 새벽이 오듯 오늘을 사는 일, 오늘만큼 중요한 것은 없다. 그것이 살아있다는 축복이다.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새로운 세상을 향해 나아가 마지막 순간까지 내가 하고 싶은 대로 자유로운 삶을 살아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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