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태 반복않겠다는 선언부터 하길
구태 반복않겠다는 선언부터 하길
  • 권혁두 기자
  • 승인 2022.03.20 1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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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논단
권혁두 국장
권혁두 국장

 

1986년 12월 당시 전두환 대통령이 군 장성급 인사를 단행했다. 합참의장에 최세창, 3군 사령관에 고명승, 보안사령관에 최평욱, 수방사령관에 김진영 등이 발탁됐다. 쿠데타와 집권 과정에서 자신의 참모로 보좌한 측근들을 육군의 요직 중 요직에 두루 기용한 것이다. 당시 노태우 대통령 당선인의 취임을 두달 남짓 남긴 시점이었다.

의논은커녕 사전 통보조차 없이 강행한 전두환의 벼락 인사에 노태우는 분개했다. 노태우는 취임을 목전에 둔 자신에게 일언반구도 없이 심복들을 군 요로에 포진시킨 전두환의 무례한 인사를 “병권은 내손에 있다”는 일종의 포고로 받아들였다. 이 때가 두 사람의 관계에 결정적으로 금이 가고 전두환의 백담사 유폐 수순에 들어가기 시작한 지점으로 꼽힌다.

노태우는 공개적으로 항변하지 못했다. 5공 내내 후계자 지위를 유지하기 위해 육사 동기이자 절친인 전두환에게 철저한 예우와 저자세로 일관한 주특기를 다시 살려 화를 꾹꾹 눌러 참았다. 이같은 반발을 전해들은 전두환 측은 “국군통수권자가 인사요인이 발생할 경우 적절한 인사를 하는 것은 당연한 책무”라고 해명했다고 한다. 정권 말기 대통령과 당선인 간에 벌어진 인사 갈등의 원조가 아닐까 싶다. 이후 정권 교체기 마다 비슷한 상황이 되풀이 됐다.

2007년 노무현 대통령은 당시 이명박 당선인으로부터 두번이나 공기업 인사를 자제해 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그러자 “한번만 더 인사 얘기를 하면 모욕으로 받아들이겠다”고 받아쳤다. 박근혜 전 대통령도 당선인 시절 이명박 청와대의 마사회 감사 인사 등을 빗대 “전문성을 무시한 낙하산 인사가 벌어진다는 얘기가 들린다”고 견제구를 날렸다. 문재인 대통령도 후보 시절 당시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의 공기업 인사를 겨냥해 탄핵정권의 알박기 인사라고 맹비난 했다.

지금 청와대와 윤석열 당선인의 대통령직 인수위 간에도 똑같은 신경전이 재연되고 있다. 인수위와 국민의힘은 청와대와 민주당 출신 인사의 공공기관 임원 선임을 알박기라고 비판하고 있다. 탈원전 정책을 주도해온 한수원 사장의 연임 추진에 대해서도 새 정부의 정책기조에 제동을 걸려는 저의가 있다고 날을 세운다.

전례를 보면 이런 인사는 대체로 후유증을 낳았다. 출범한 새 정부는 전임 대통령 인사를 되돌리는 데 에너지를 낭비하기 일쑤였다. 대통령에 취임한 노태우는 전두환 라인의 핵심인 박희도 육참총장을 임기가 6개월이 남았는데도 경질했다. 대장 승진 1순위였던 최평욱은 중장으로 옷을 벗었고, 김진영은 교육사령관으로 좌천됐다. 그리곤 자기 사람으로 채웠다. 이 역시 옹졸한 인사로 비판받았다. 이후 정권들도 다르지 않아 퇴출 임원 리스트를 만들어 사퇴를 압박하고 의사결정 라인에서 소외시키는 등의 무리수를 동원했다가 큰 사달을 만들기도 했다.

임기말까지 계속되는 볼썽사나운 낙하산 인사에 대한 인수위의 비판은 일리가 있다. 하지만 이 비판은 늘 인사권자의 합법적 업무라는 절차적 정당성 앞에서 멈춰버려 개선을 이끌 동력으로 작동하지 못했다. 무엇보다 당선인 시절 비판의 선두에 섰던 대통령들이 측근에 대한 사사로운 정리와 기득권을 떨치지 못해 스스로를 부정하고 전임자를 답습한 탓이 컸다.

윤 당선인과 인수위는 알박기 인사가 정권 말기마다 반복돼 관행으로 굳어진 1차적 원인에 주목하고, 정권을 향한 이번 비판이 구호에 그치지않도록 하겠다는 각오를 다지는 선에서 인사 갈등을 매듭짓기 바란다. 윤 당선인이 “임기를 마치는 대통령이 당선인 시절 자신이 했던 비판을 고스란히 되돌려 받는 악순환을 끊는 첫 대통령이 되겠다”고 선언하는 것이 그 다음 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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