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번째 맞는 잔인한 4월
3번째 맞는 잔인한 4월
  • 하성진 기자
  • 승인 2022.03.20 17:5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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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의 주장
하성진 부장(취재팀)
하성진 부장(취재팀)

 

“4월은 가장 잔인한 달. 죽은 땅에서 라일락을 키워내고 추억과 욕정을 뒤섞고 잠든 뿌리를 봄비로 깨운다. 겨울은 오히려 따뜻했다. 잘 잊게 해주는 눈으로 대지를 덮고 마른 구근으로 약간의 목숨을 대어주었다.”

봄이면 접하게 되는 시, 영국의 시인 토머스 스턴스 엘리엇(T.S. Eliot·1888~1965)의 `황무지'다.

엘리엇은 이 시를 통해 무엇을 전달하고자 했을까. 그가 4월을 `가장 잔인한 달'이라고 표현한 것에 대한 해석은 많다. 다만 이견이 없는 것은 1차 세계대전(1914~1918년) 후 유럽의 황폐한 모습을 상징적으로 그렸다는 사실이다.

이면에는 봄이 오고 꽃이 피는 희망의 계절임이 분명하지만 당시 유럽의 현실이 매우 절망적이었다는 점을 역설적으로 표현했다.

전쟁의 후유증으로 처참할 대로 처참해진 땅에 어김없이 봄은 찾아왔고 되레 그 봄은 잔인해 보였을 테다.

2020년 우리나라의 4월을 복기해본다. 잔인하기 짝이 없다. 지독하게 모진 코로나19는 대한민국을 집어삼키고 충북을 엄습했다. 벌써 2년이 흘렀다.

어김없이 찾아온 2차례의 봄은 낭만도, 행복도 모두 코로나19에 빼앗겼다.

코로나19는 누구나 어디서든 마음껏 누려야 하고, 또 당연히 누릴 수 있는 봄을 통째로 삼켜버렸다.

벚꽃을 비롯한 봄꽃이 활짝 피었지만 그저 도화지 속에 수놓은 그림에 불과했다.

화목한 가족이, 다정한 연인이 손을 잡고 벚꽃 구경하는 일상의 소소함마저 코로나19에 빼앗겼다.

학교라는 새로운 세계로의 입문을 앞두고 잔뜩 기대했던 8살 난 꼬마들은 벌써 10살이 됐다. 코로나19는 꼬마들의 우정을 허락하지 않았다.

입시지옥을 뚫고 나온 어엿한 새내기 대학생들은 캠퍼스에서의 낭만 대신 `집콕'에 따른 무료함에 빠져있다가 어느새 군대로, 취업전선에 뛰어들고 있다.

땀 흘리며, 콧노래 부르며, 일에 몰두해야 할 자영업자들은 제발 영업 좀 하게 해달라며 절규하다가 끝내 간판을 내렸다.

코로나19가 창궐하고 맞는 3번째 4월. 지금의 대한민국은 어떤가.

하루 60만명 이상의 확진자 발생이라는 기록까지 찍었다.

20일에도 신규 확진자는 33만명이 나왔다. 누적 확진자는 937만3646명으로 집계됐다.

이날 발표된 신규 확진자는 전날(38만1454명)보다 4만6746명 줄어 이틀 연속 30만명대를 기록했다.

이제 누적확진자 1000만명 돌파는 하루 이틀 시간문제다.

사망자 수도 무려 400명대로 불어났다. 그동안 하루 100~200명대였던 하루 사망자가 400명 넘게 나온 것은 국내 코로나19 사태 이후 처음이다.

다만, 역설적으로 표현하면 코로나19 오미크론 변이 대유행이 정점을 향해 가고 있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정부는 “전문가 예측에 따라 지난 12일부터 오는 22일 사이에 정점을 지날 것으로 보이며, 23일 이후에는 점차 감소세가 될 것”으로 전망했다.

갑갑한 일상생활에 지친 국민이 `코로나19 언제 종식될까'라는 푸념을 쏟아내는 상황에서 이런 예측은 가뭄에 단비 같다. 조심스럽지만, 희망감을 가져볼 만 하다는 전문가 의견도 나오고 있다.

지칠 대로 지쳤어도 조금만 더 힘을 내기를 바란다. 자발적이고 엄격한 방역 실천은 선택이 아닌 의무다. 잔인한 4월이 지나면 행복한 5월이 찾아올 것을 손꼽아 기대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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