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영복과 어깨동무체
신영복과 어깨동무체
  • 강석범 충북예술고 교감
  • 승인 2022.03.16 1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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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산책
강석범 충북예술고 교감
강석범 충북예술고 교감

 

뭐든 오리지널에 해당하는 것들이 있다. 꼭 어떤 대상이나 사조, 역사, 사회적 의미를 품고 있는 것들이 아닐지라도 그것들은 존재한다.

신영복 선생님의 글씨를 보통 `어깨동무체'라고도 한다. 이유는`글씨들이 같이 어깨동무를 하고 있는 것 같다'라고 말하며, 가장 대중적인 것은 `처음처럼'이라는 브랜드를 사용한 술(소주)에서 보아온 글씨가 대표적이다. 지금은 폰트가 만들어져 비교적 많이 사용하지만, 초창기에는 글씨체가 참 귀했다. 요즘은 이 글씨체를 고전으로 삼아 많은 서예가가 신영복체를 연마하기도 해, 하나의 유행으로 자리 잡지 않았나 생각한다. 그만큼 좋아하는 이들도 많지만, 또 너무 많이 선택한 나머지 어지간한 음식점 간판이나 각종 관공서의 글씨도 신영복체로 도배되다시피 해 한편 식상한 글씨체가 되어가는 아쉬움도 있다.

일단 신영복체는 글자 하나하나의 구성보다 전체화면의 조형성이 뛰어나다. 물론 글자 내에서 어우러지는 각 획의 구성력도 체계적이다. 이러한 구성력은 철저한 계획에 따라 만들어질 수도 있고, 많은 연습량을 통해 직관으로 완성될 수도 있다.

신영복 선생님의 경우 감각이나 직관력보다는, 연습량을 통한 구성력을 갖췄다고 보아진다. 그렇게 생각한 이유는 신영복 글씨의 세련되지 않은 둔탁한 조형성 때문이다.

만약 어깨동무체가 철저하게 세련되었다면 평범한 캘리그라피의 한계를 넘지 못했을 것이다. 뭐든 적절한 세련미가 고전답고 오리지널 하기도 하다. 과하지 않은 획과 잘난 척 휘날리지 않는 겸손한 붓끝이 신영복 선생님의 모습과 더 닮아서일까?

나는 신영복 서체를 고전으로 하는, 소위 말하는 `신영복체 닮은 글씨'들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고전은 고전의 맛이 있다. 그렇다고 고전을 한낱 필사본의 답습으로 여기는 게 좋다는 건 아니다. 오리지널 글씨에서 정말 본질을 찾는다면, 획의 남발이나 멋스러움 만을 치장하여 `내가 신영복체를 가장 잘 쓴다'라는 자아도취에 빠지는 일은 없어야겠다.

아직 `판본체'나 `궁체'처럼은 아니지만 이젠 `신영복체'도 하나의 고전으로 자리 잡았다. 일단 신영복체는 한글 획의 필법보다 한자의 필법을 익히면 훨씬 더 잘 쓸 수 있는 글씨다. 신영복 선생님께서 혹시 한자 서예를 얼마나 공부하셨는지 알 수 없으나, 한자 서예의 가장 큰 특징인, 획의 시작과 마무리, 꺾임 등, 획의 운용에 있어 붓끝이 `중봉(붓끝의 뾰족한 부분이 획의 한가운데로 가는 것)'을 따르며 방향을 전개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물론 이 또한 의도적인지 아니면 수많은 연습으로 이어진 하나의 습관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정통서예의 필법적 측면에서 봐도 고개가 끄덕여진다. 또 붓의 시작점이 흐트러져도 붓을 정리하여 다시 시작하지 않고, 흐트러진 붓끝을 모아 진지하게 끌어간다. 그리고 이러한 노력은 고스란히 겸손한 글씨로 다가온다.

사실 그게 신영복 서체의 `힘'이다.

세련미로 이기는 게 아니고, 마음으로 획을 끌어가는 것! 그래서 한 글자씩은 다소 어색하더라도 전체 조형미는 푸근함을 준다. 그래서 가슴에 와 닿는다.

어제는 반가운 신영복체를 교장실에서 만났다. 새로 부임하신 교장 선생님의 명패가 힘 있는 신영복체로 쓰여 책상 위에 놓여 있다. 정말 힘 있다, 단순하고 명쾌한 성과 이름, 단 세 글자인데 오랜만에 글씨로 위로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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