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다발을 안으며
꽃다발을 안으며
  • 신미선 수필가
  • 승인 2022.03.16 1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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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신미선 수필가
신미선 수필가

 

겨우내 눈이 쌓이고 녹기를 반복하던 화단에 어디서 날아왔는지 냉이 한 뿌리가 올라와 있다. 추위를 이겨내고 푸릇푸릇 따뜻한 온기를 신호 삼아 싹을 돋운 그 모습이 대견하다 못해 생명의 위대함마저 들게 한다. 살랑살랑 유치원 앞마당에 어느새 봄이 기지개를 켜고 있다.

“종일토록 지팡이를 짚고 봄을 찾았지만 뜻을 이루지 못하고 집에 돌아와 보니 매화나무 가지 끝에 봄이 와 있더라.”라는 말처럼 봄을 알리는 첫 신호는 뭐니 뭐니해도 식물과 더불어 꽃인 듯하다. 이미 아랫녘 남도에서는 꽃이 피기 시작했고 봄이 한창이라는 인터넷 기사를 읽고 있자니 이곳 앞마당에도 봄의 전령사들이 그 모습을 화려하게 드러낼 날이 머잖은 듯하다.

유난히도 꽃을 아끼는 동료 교사가 올해에도 어김없이 봄꽃을 잔뜩 사 들고 출근을 했다. 노란색과 빨간색이 예쁜 앵초와 그윽하고 진한 향이 일품인 알뿌리 식물 히아신스도 색깔별로 가지고 왔다. 긴 겨울 밋밋했던 공간을 한순간 화사하고 향기로움으로 탈바꿈시켜 버린 그녀의 꽃 사랑이 빛을 발하는 순간은 늘 이렇게 삼월 이맘때 즈음이다.

교실에도 봄볕처럼 눈부시게 빛나는 아이들 열 명이 꽃처럼 내게로 왔다. 여자아이 일곱 명에 남자아이가 세 명이다. 그중에 다문화 아이도 두 명이 포함되어 있다. 눈이 크고 긴 머리에 분홍색 외투를 즐겨 입는 아이, 하얀 운동화가 유난히 돋보이는 짧은 머리의 여섯 살 남자아이, 머리부터 발끝까지 엄마의 사랑으로 단장한, 디즈니 만화에서나 나올법한 공주 차림의 다섯 살 아이까지 그 모습들이 마치 알록달록 꽃다발 같다.

학기가 새로이 시작되는 삼월은 아이들에게 유치원에서의 다양한 생활에 대해 가르친다. 아이들 한 명 한 명에게 일일이 노란 병아리 모양의 이름표를 가슴에 달아주고 기차처럼 한 줄로 세워 이곳저곳 유치원을 구경시켜주고 눈높이를 맞춰가며 단체 생활에서 꼭 지켜야 할 규칙과 약속 등도 일러준다. 서로의 이름을 익히고 자연스럽게 같이 어울리고 놀이하면서 그 속에서 함께하는 즐거움을 시작하는 중요한 시기이다.

교사는 교사대로 아이들과 함께 한 해를 잘 지낼 수 있도록 다짐하는 달이다. 올해는 여섯 살 난 열 명의 아이들과 학기가 시작되었다. 멀리 외국에서 온 다섯 살 난 작은 여자아이는 아직 한국말을 거의 하지 못한다. 그러나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손을 내밀어 도움을 청하니 나는 올해 이 아이에게 한국어를 열심히 가르쳐볼 생각이다. 또 한 아이는 개인 사정으로 엄마와 떨어져 할머니 집에서 유치원에 다니니 좀 더 세세하게 아이를 살펴야겠다. 오늘 하루가 어땠는지 자주 물어주며 관심과 사랑으로 이 아이를 웃게 해 주리라. 부모님의 직장 관계로 늘 늦은 시간까지 돌봄실에 있어야 하는 여섯 살 난 녀석에게는 나의 퇴근을 조금 미루더라도 이 아이 곁을 지키며 혼자라는 불안을 조금씩 완화 시켜 줄 것이다. 한 명 한 명이 모두 내게는 저마다의 품새로 예쁜 꽃들이니 늘 화사하게 피어날 수 있도록 지켜낼 것이다.

아이를 키운다는 건 콩나물시루에 물을 주는 것과 같다고 한다. 시루에 물이 다 빠져 헛수고일 것 같아도 어느새 아이들은 쑥쑥 자라 있다. 나는 올 한 해 몸도 마음도 쑥쑥 자라날 이 아이들을 위해 누구보다 열심히 사랑으로 보듬어 보리라. 반짝반짝 저마다의 빛깔로 내게 와준 열 명의 소중한 꽃을 안으며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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