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응복 옹의 마지막 나눔
장응복 옹의 마지막 나눔
  • 연지민 기자
  • 승인 2022.03.14 20:0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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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논단
연지민 부국장
연지민 부국장

 

지난 6일 세상을 떠난 한 노 신사의 기사가 마음을 사로잡았다. 대통령 선거에 묻혀 크게 보도되지는 않았지만, 99세인 그는 세상을 떠나며 전 재산을 대학에 기부했다고 한다. 부가 대물림되고, 부에 대한 욕망이 커지는 각박한 극자본주의 사회에서 한줄기 희망처럼 느껴지는 소식이다.

기부의 주인공은 장응복씨로 서울에서 개인병원을 개원해 평생 의사로 살았던 분이다. 황해도가 고향인 그는 한국전쟁으로 월남한 후 서울 한남동에 터를 잡고 평생 환자를 진료하며 일했다고 한다. 당시만 해도 서울 외곽이었던 병원은 30년 세월이 지난 지금은 서울에서도 가장 뜨거운 부자 땅이 되었다. 하지만 그에겐 1991년 은퇴할 때까지 환자를 돌보던 일터였다. 한남동이란 말만으로도 어마어마한 부동산 가격이 따라붙지만 그는 그곳에서 번 돈을 이웃을 위해 아낌없이 돌려주었다.

그는 전 재산 113억을 기부한 한동대학교와는 2015년부터 인연을 맺었다고 한다. `배워서 남 주자'는 한동대학교의 표어를 보고 반해 `벌어서 남 주자'는 마음으로 대학에 기부를 결심했다고 한다. 2015년 첫해에 35억7000만원 기부한 것을 시작으로 매년 1억~50억원을 청년들의 미래를 위해 기부했다고 한다.

이러한 선행도 그가 임종 후에야 비로소 알려졌다. 생전에 선행이 알려지는 것을 거부하였고, 그나마 대학의 설득으로 사후에는 밝혀도 된다는 답을 받았단다. 아무 대가 없이 자신의 모든 것은 대한민국 미래에 남겨준 그의 진심이 감동을 두 배로 안겨준다.

100억 원대가 넘은 재산을 자식이 아닌 사회에 기부한 것도 놀랍지만, 더 큰 감동은 일상에서 보여준 노 신사의 모습이다. 그 많은 재산에도 살아생전 자가용 한 대 없이 대중교통을 이용했으며, 아내가 손수 뜨개질로 떠 준 옷을 입고 다닐 정도로 검소했다고 한다. 거창하게 나눔을 말하기보다 일상에서 이웃과 사회 공동체 일원으로 살아가는 지혜를 나눔으로 실천했던 것이다.

그가 전 재산을 대학에 기부하겠다고 서약서를 쓸 때, 세 자식은 당연하게 받아들였다고 하니 그 아비에 그 자식이 아닐 수 없다. 생각은 해도 실천으로 옮기기엔 전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가 극자본주의로 치달을수록 상대적 박탈감만 안겨주는 뉴스 속에서 노 신사의 실천적 나눔의 삶은 그래서 더 값지다.

나눔은 시대 불문하고 있었다. 역사 기록에도 재해가 닥치면 가진 이들이 솔선수범해 곳간 문을 열어 이웃 사람들에게 곡식을 나눠주었고, 복구를 위해 함께 노동으로 견디며 극복했다. 시대는 다르지만 어려움을 이겨내고자 서로가 서로에게 공동체 일원으로의 역할을 해왔던 것이다. 단지 국가의 문제로 떠넘기지 않고 지역공동체의 문제로 접근해 풀어나갔던 선조의 지혜가 지금의 대한민국을 만들었다.

하지만, 언제부터인가 우리는 가진 이들은 더 갖겠다고 욕망을 부풀리고, 없는 이들은 없어서 분노하며 욕망을 키우는 이기적인 사회로 굴러가고 있다. 돈이 없으면 불안하고, 돈을 좇게 하는 빈부격차는 더 큰 갈등으로 대두하고 있다.

세계 경제 대국으로 우뚝 섰지만, 우리 사회가 극자본주의화 될수록 공동체가 지향해야 할 가치는 `함께'이다. `함께'라는 세상의 가치는 이웃에 대한 따스한 시선과 행동하는 나눔으로 시작한다. 돈만 있어도 안 되고, 마음만 있어도 안 되는 것이 `함께'라지만, 공동체 속에서 그 가치가 실현되도록 깊이 모색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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