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합은 과제가 아닌 의무다
통합은 과제가 아닌 의무다
  • 권혁두 기자
  • 승인 2022.03.13 1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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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논단
권혁두 국장
권혁두 국장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에게 이런저런 주문이 쏟아지고 있다. 그 조언들의 첫머리는 한결같다. `통합'이다. 대부분 언론과 소감을 요청받은 인사들은 통합을 새 대통령의 1차적 과제로 제시했다. 문재인 대통령도, 그에게 석패한 이재명 민주당 후보도 승자에게 통합을 우선 당부했다. 0.73%포인트 차이의 박빙 승부가 우리 사회에 던진 필연적인 화두일터이다. 윤 당선인도 당선 후 첫 일성에서 통합을 강조했다.

윤 당선인은 과반의 선택을 받지 못했다. 시종 50%를 넘어섰던 정권교체 여론을 온전히 흡수하지 못했다. 민주당호에 실망해 하선한 중도층 가운데 상당수가 장고끝에 귀선했다. 그들은 선거 과정을 지켜보며 야당의 수권 능력을 신뢰할 수 없다는 결론을 내렸을 것이다. 윤 당선인과 국민의힘이 곱씹어야 할 뼈아픈 지점이다. 차려준 밥상조차 제대로 챙기지 못한 간발의 승리에 취해 있을 때가 아니라는 얘기다.

윤 당선인이 정권과 대립하던 검찰총장 시절부터 입에 달고 살았던 말이 있다. “오직 국민만 보고 가겠다”. 선거운동 때도, 당선된 후에도 그는 이 말을 되풀이 했다. 이제 윤 당선인은 자신을 지지하지않은 유권자가 과반에 달하는 국민을 바라보고 가야한다. 그들은 그럴 줄 알았다고 혀를 찰 준비를 하며 때를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해서 통합은 그에게 부여된 지상과제이기도 하지만 성공한 대통령이 되기 위해 반드시 통과해야 할 관문이기도 하다.

지지층에 어필했던 공약들을 재검토하는 것도 통합의 한 방편이라고 생각한다. 통합, 소통, 협치 같은 거대 공약 실천에 걸림돌이 될 공약들은 백지화 상태에서 다시 살필 필요가 있다. 찬반론이 첨예하게 대립하는 여성가족부 해체 공약이 대표적이다. 반대자들도 아우를 절묘한 조율이 필요하다. 민주당이 172석을 장악한 국회의 동의도 구해야하는 만큼 자칫 윤 당선인이 약속한 협치를 가로막는 장애물이 될 수도 있다.

윤 당선인은 존경하는 지도자로 처칠을 꼽았다. 처칠은 프랑스에 주둔하던 육군의 주력이 독일군에 밀려 도버해협 건너 덩케르크 해안에 고립됐고, 독일의 영국 본토 공격이 임박한 절체절명의 시기에 총리에 취임했다. 그는 결사항전을 결단했지만 독일과 평화협정을 하고 전쟁에서 발을 빼자는 반대도 만만찮았다. 여당인 보수당 내에서도 더 이상 젊은이들이 피를 흘려서는 안된다는 협상파들이 득세해 총리 불신임안을 준비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이 때 처칠이 찾아 간 곳이 런던 시내를 운행하는 지하철이었다. 거기서 시민들을 만나 고민을 털어놓고 그들의 목소리를 들었다. 다음날 의회 연설에서 처칠은 지하철에서 만난 사람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호명하며 `침략자에 굴복해 노예로 살 수는 없다'는 시민의 결연한 의지를 절절하게 전달했다. 처칠이 전한 지하철의 민심은 분열됐던 의회와 전시내각, 나아가 국민을 결속시켜 영국이 독일의 공격을 막아내고 승전국으로 우뚝 서는 계기가 됐다. 숱한 난제를 앞둔 윤 당선인이 해법을 찾아야 할 곳이 어디인지 알려주는 대목이다.

처칠은 술꾼이었다. 알콜 중독에 가까웠다. 커피 대신 스카치 위스키로 아침을 시작하고 점심과 저녁 식사때는 샴페인을 들이켰으며 자기 전에는 꼭 브랜디를 마셨다. 그가 총리가 됐을 때 정적들은 “주정뱅이에게 대영제국의 운명을 맡겼다”고 비웃었다. 처칠을 다룬 영화 `다키스트 아워(Darkest Hour)'에는 국왕이 그와의 점심 자리에서 “총리는 어찌 그리 낮술을 잘드시냐”고 핀잔하는 장면도 나온다. 그러나 지금 그를 술꾼으로 기억하는 사람은 없다. 허물을 덮고도 남을 업적을 남겼기 때문이다. 윤 당선인도 업적으로 기억되는 대통령이 되기를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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