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의 흥취
봄의 흥취
  • 김태봉 서원대 중국어과 교수
  • 승인 2022.03.07 19: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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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봉 교수의 한시이야기
김태봉 서원대 중국어과 교수
김태봉 서원대 중국어과 교수

 

봄은 하루아침에 오는 것이 아니다. 때가 되면 저절로 오게 돼 있지만, 봄을 기다리는 마음은 그렇게 한가롭지 못한 게 현실이다. 하루라도 빨리 봄이 오기를 고대한 사람들은 봄을 만나게 되면 절로 신명이 나게 마련이다.

고려(高麗)의 시인 정몽주(鄭夢周)도 봄을 맞아 흥취를 느끼기는 마찬가지였다.


봄의 흥취(春興)

春雨細不滴(춘우세부적) 봄비는 어찌나 가늘던지 방울져 떨어지지 않고
夜中微有聲(야중미유성) 밤 중에 희미하게 소리 들리네
雪盡南溪漲(설진남계창) 눈은 사라지고 남쪽 계곡물이 불어나니
草芽多小生(초아다소생) 풀 싹은 얼마나 돋아났을까?

겨울이 삭막하고 우악스럽다면 봄은 화사하고 잔잔하다. 꽃샘추위나 미친 봄바람 같은 말도 있긴 하지만, 이는 봄의 도래에 들뜬 사람들의 투정에 불과한 말들일 뿐이다.

시인은 비에서 봄을 느낀다. 봄의 잔잔함을 느끼게 해 주는 봄비이기 때문이다. 시인이 만난 봄비는 보슬비보다도 더 가는 듯하다. 방울조차 맺지 못하는 안개 수준의 비로 보인다. 그러니 낮에는 그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깊은 밤이 되어 사방이 고요해지자, 그때야 소리가 희미하게 들릴 뿐이다.

봄의 잔잔함을 이보다 더 감각적으로 표현할 수는 없을 것이다. 이렇듯 잔잔한 봄비지만, 그 공능은 결코 잔잔하지 않다. 철옹성 같던 계곡 주변의 눈들을 다 녹여 버리는 위력을 발휘한 것이다. 눈 녹은 물이 계곡으로 흘러들어 가 남쪽 계곡물이 불어난 게 눈에 띄일 정도였다. 그리고 땅속에서 아직 나오지 못했던 풀싹들이 돋아나는 것도 이 잔잔한 비의 힘이 아닐 수 없다.

봄비는 가늘어 방울 맺히지도 않고, 소리도 거의 없다. 큰 소리 내어 떨어지지 않지만, 스미어 들지 않는 곳은 없다. 눈도 녹이고 싹도 돋아나게 한다. 하루가 다르게 세상의 모습을 바꾸는 기계가 있다면, 그 윤활유가 봄비인 셈이다. 봄비 그치거든 산야에 나가 보는 것을 잊으면 안 된다. 봄의 변화된 파노라마를 볼 기회이지 않은가?

/서원대학교 중국어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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