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피엔스 변명
사피엔스 변명
  • 배경은 단재기념사업회 사무국장
  • 승인 2022.03.06 18:4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마음 가는대로 붓 가는대로
배경은 단재기념사업회 사무국장
배경은 단재기념사업회 사무국장

 

약 3만 년 전까지만 해도 지구상에는 여섯 종의 호모종이 살고 있었다. 그 중 호모 사피엔스만이 살아남아 똑똑해지는 시기와 정주하며 자연을 길들인 시기를 거쳐 지금은 인간의 생로병사까지 주관하고 있다. 호모 사피엔스는 생존과 번영을 위해 스스럼없이 약탈과 침략을 일삼으며 문화를 발전시켰다. 침략과 정복의 역사는 같은 종을 죽음으로 몰아넣었고 과학혁명 이후 `자본'은 상상의 질서로서 무소불위의 권력이 되었다.

유발 하라리의 『호모 사피엔스』를 읽으며 지구와 공존하기보다 더 큰 욕망으로 `신'이 되려 하는 인간의 본성을 다시 한번 확인했다. 마음이 씁쓸했다. 나도 호모 사피엔스의 후손이므로.

프랑수아 플라스가 쓰고 그린 『마지막 거인』은 본의 아닌 행동이었으나 그것이 다른 세계를 약탈하는 실크로드가 되어 소중한 관계를 파괴한다. 이 한 권의 책으로 작가는 많은 상을 받았고 세계 사람에게 호응을 얻었다. 우연히 얻게 된 사람의 이(치아)를 연구하다가 거인족 나라를 찾아 나선 1849년의 지질학자 루트모어 이야기. 몇 번의 죽을 고비를 넘기고 도착한 거인족 나라는 정말 실재하고 있었다. 거인들의 극진한 환대와 영혼의 소통으로 그들은 친구가 되었다. 거인족은 고유한 문신을 저절로 만들어내는 피부를 갖고 있었고 노래하는 방식과 먹는 것도 달랐지만 충분히 교감했고 서로를 깊이 존중하고 있었다. 시간이 지나 그는 인간의 세상으로 돌아온다.

호모 사피엔스 루트모어는 자신의 세상에 오자마자 겪은 경험담과 거인족을 관찰한 내용을 아홉 권의 책으로 출간한다. 유명해진 모험가는 여러 나라를 돌아다니며 순회 강연도 한다. 위대한 발견자가 된 것에 대한 자부심과 승리감의 도취는 뜻하지 않은 결말을 예고했다.

두 번째 원정대를 계획해 흑해가 시작하는 어느 마을에 도착했을 때, 루트모어는 목격한다. 자신과 가장 친하게 교감했던 거인 안탈라의 머리가 마차에 실려 오는 모습을. 그의 책이 거인들을 살육하는 도구로 쓰인 것이다. 가장 아름다워야 할 비밀이 배반당한 우정으로 사라지고 말았다. 한 번이라도 인간 세상에 까발려질 거인들을 생각했더라면….

신영복 선생님의 『더불어 숲』에 실려 있는 「로마유감(有感)」 에는 로마를 제일 먼저 가보라고 권한다. 로마는 `문명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물음을 가장 진지하게 반성할 수 있는 도시기 때문이라고. 개선장군의 말발굽 소리는 전장에서 죽은 자들이 만들어내는 소리일 수 있으며 위대한 문명 앞에서 헤아릴 수도 없던 노예들의 고통을 들을 수 있어야 한다. 로마가 로마일 수 있었던 것은 수많은 피정복민의 피땀과 재물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유네스코가 지정한 세계유산 중 40%가 로마에 있는 것은 제국에 대한 예찬과 동경을 세련된 방법으로 (약탈 시대를) 합리화하고 있다는 방증이다.

인간의 탐욕은 문명을 초월하여 더 많은 것을 부수고 다시 짓기를 반복한다. 편리한 생활을 위해 생산하는 에너지는 그저 인본주의적일 뿐이다. 위 책을 읽고 `인간 중심'이라는 말이 혐오스럽게 느껴진다. 문명관(文明觀)은 과거 문명에 대한 관점이라기보다는 우리의 가치관과 직결되어 있다고 신영복 선생은 말씀하셨다. 역사는 분절적으로 우리에게 존재하지 않고 유기체로서 서로 영향을 끼친다. 지금껏, 호모 사피엔스가 물리적 길을 내는 것에 위대한 업적을 쌓았다면 이제는 성숙한 문명을 꿈꿔야 한다. 성찰과 고뇌의 공간이 우리 가슴 한 켠에 있기를 바라본다.

인공지능 시대 무기력한 말일 수도 있지만, 개발과 문명은 반드시 생명의 가치를 기반에 두고 있어야 한다. 인본주의를 넘어 인류애가 필요한 시대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